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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14. 2022

아마도 가장 지켜지지 않는 약속

 경험으로 비춰보면, 지인과 만날 약속을 했을  제시간에 맞춰 만남이 성사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그래서 나는 제시간에 오겠지, 하는 기대 따위는 버린  오래다. 5 약속이라면 5 10분쯤엔 오겠지, 예상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5 5분에 지인의 모습이 보이면 그래도 빨리 와서 다행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정도다.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면, 그저  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같다. 도대체 이게 무슨 세태인가 싶다.


자랑이지만, 나는 나보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약속은 말 그대로 약속이기에,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쌍방이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외출 준비시간은 물론이고 대중교통 도착까지의 대기시간, 도로교통상황 등 떠올릴 수 있는 변수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가끔 그런 미래의 환경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되묻는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면 그만큼 더 일찍 나와야지, 왜 그냥 나올까?


자주 지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저런 변수들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버스의 배차간격이 10분이면 0~10분의 평균값인 5분 정도만 기다리면 올 거라 계산하거나, 걸어 다니는 내비게이션처럼 처음 가보는 식당도 한 번에 잘 찾을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얘기다. 물론 넘겨짚었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대체 왜 그렇게 자주 늦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하는 얘기다.


조금 양보해서, 나름대로 계산하여 준비를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변수가 겹쳐 조금씩 늦어지게 되었고, 그러한 변수들이 생각보다 커다란 시간 지연을 일으켜 갈아타는 구간에서 열심히 달려보는 등 애를 썼으나 결국 늦게 되어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러니까 시간 약속에 대한 개념이라도 제대로 갖춘 사람이라면 그래도 양호하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특별한 상황도 분명 존재할 수는 있는 법이고, 나도 그런 상황을 마주한 적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이러한 모습이 반복된다면 개념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결국 자주 지각하는 사람은 시간 약속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건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낭비되지 않도록, 즉 상대방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이 사소해 보이는 행위가 자신을 기본적인 시간 개념을 갖춘 사람으로 만들어 신뢰도를 높이는 행위라는 의미다. 시간 약속이 이렇게 꼭 이유가 있어야 지키는 행위인가 갸우뚱해지기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항상 잘 지킨다. 지키려고 단단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잘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자주 늦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이 늦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신뢰도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평균적인 차원에서 늦는 사람들을 하도 자주 목격하다 보니, 이 신뢰도 역시 평균적으로 이미 하락해 있기도 하다. 모임 약속을 하면 누군가는 늦겠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실제로 여럿은 늦는다. 그러면 그들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하락하지도 않는 듯하다.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늦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는 나처럼 늦겠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상상해보자. 그 모임에서 오로지 자신만 늦었다면, 그렇게 늦는 사람이 매번 자신뿐이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빨리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부터는, 시간 약속은 잘 지키는 사람이 손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참으로 씁쓸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단순히 5분, 10분의 시간낭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약속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타인의 시간 역시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자신의 신뢰도는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의 문제를 포함한다. 그럼에도 '10분쯤 늦어도 괜찮겠지 뭐' 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할 때 1분도 늦지 않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 약속은 약속이다.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그럼에도 잘 지켜지지 않는, 그런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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