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4호선 이수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던 중, 그런 바쁜 발걸음을 나도 모르게 잠시 멈추게 만드는 표지판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변금지]
피식 웃게 만드는 짧은 문구를 보고 나는 몇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이 문구가 만일 실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졌다면,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가는 장소에서 누군가 실제로 대변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문구라면, 이는 합당한 조치일 수 있다. 우습지만, 실낱 같은 재발 가능성을 간과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반면 그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문구라면 얘기는 좀 다르다. 그렇다면 이런 문구를 적어 놓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아마 둘 중 하나일 거다. 성악설에 근거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단순히 시민들의 웃음코드를 자극하고 싶었던 사람이거나. 도대체 누가 이곳에서 대변을 본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와 거의 동시에, 기상천외한 뉴스들을 보며 놀랐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대변을 보았다는 소식이 흥미롭지만 큰 뉴스거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대변금지 문구의 존재가치에 대한 판단을 바꾸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현실은 생각보다 자주 상상을 뛰어넘는다. 어느새 고정관념은 나에게까지 스며들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 문구 때문에 자신의 행위의 문제성을 늦게나마 인식하고, 대변을 다른 장소에서 보기 위해 이동하는 사람을 목격하지 말라는 보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린 나는, 다른 역에는 아직 이 문구가 붙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모든 역에 이 문구가 붙게 된다 해도 놀라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