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May 12. 2022

미처 담지 못한 마음

타인과 대면하여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자 할 때, 대화 그 자체를 제외한 외적요소를 통해서도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오간다. 그래서 그러한 요소에 해당되는, 이를테면 말투, 표정, 눈빛, 몸짓 등은 소통의 훌륭한 보조수단이 된다.그리고 때로는 보조수단을 넘어, 말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말보다 더 많이 담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보조수단들을 활용할 수 있기에, 직접 만나서는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더 쉽게 전할 수있다. 가끔 외적요소가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활용 방식의 문제일 뿐, 외적요소가 의사전달에 미치는 긍정적 요소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예시가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와 달리 글을 통해서만 타인과의 대화가 이루어질 때에는 아쉬움을 제법 자주 느낀다. 외적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채 텍스트를 통해서만 의사가 전달되기에, 그 안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담기란 상대적으로 어렵다. 물론 고심해서 완성한 텍스트에 더 명료한 의미가 담기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것, 외적요소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 이른바 뉘앙스를 활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따뜻하게 바라보는 표정, 무심하지만 편안한 눈빛,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몸짓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소중한 의미들을 느낀다. 그렇지 않다면, 그 안에서 말로는 쉽게 이루지 못했을 감정의 이해와 생각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 때로 진정한 의미는 잘 정제된 글이 아닌, 충동적이지만, 그래서 더 진실한 행위에 담기는 것이다.


특히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 간절히 전하고 싶었지만 어떻게도 담지 못한 한 조각 마음이 끝까지 남아, 완성하지 못한, 진정한 의미에서 결코 완성되지 못할 글과 함께 괴롭힐 때가 있다. 그래서 글의 한계를 마주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을 또다시 글 속에 욱여넣어 이렇게 작게나마 아쉬움을 토로하게 된다.


부디 어설픈 글이 어설프지만은 않은 마음을 함부로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로는 미처 담지 못한 마음의 부스러기만이라도 상대방의 마음 끝자락에 닿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어쩌면 영원히 전할 수 없어안타까울 때가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에 가장 힘들었던 나날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