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소모량이 지나치게 크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지칠 때를 맞이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때가 오면 지쳐 있는 심신으로부터 필연적으로 휴식을 요구받게 된다.
그런데 휴식은 쉰다는 뜻을 담고 있을 뿐, 꼭 행위의 지속적인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행위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수면은 얼핏 행위가 아닌 것 같아도, 결국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쉬며 때때로 뒤척이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휴식 역시 사실상 행위의 일부라 정의해도 문제는 없을 듯하다.
휴식의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수면이나 독서, 영화감상 등 비교적 정적인 행위가 휴식이 될 수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등산이나 운동, 여행 등 동적인 행위가 휴식이 될 수 있다. 사실상 휴식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이별이라는 행위 역시 큰 틀에서 휴식의 종류에 포함될 수 있다. 소중했던 관계를 가볍게 여기고 일방적으로 끝내는 형태의 이별은 성숙하지 못한 행위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쳐 있는 몸과 마음에 이별이라는 이름의 휴식을 주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좋았던 날들의 무의미한 기억이 단호한 선택을 내리지 못하게 발목을 잡곤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올지 모를 순간의 아픔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을 더욱 망설이게 만든다.
사실은 망설임으로부터 오는 아픔이 순간의 아픔보다 더 큰 건 아닐까? 그런 아픔이 자신을 더욱 지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고통받아온 몸과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그저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별이 휴식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분명 비약에 가깝다. 하지만 이별을 지나치게 무겁게 여기고 있다면, 그런 비약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가볍게 가져볼 필요는 있다. 그것이 비약을 넘어선 억지라 해도, 무의미한 관계의 유지보다는 자연스러운 억지일지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