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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l 07. 2022

현실과의 타협 이전에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은 수두룩하다.  과장하면 길가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많다. 먹고살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매여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조금은 서글픈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런 선택이 마냥 잘못되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일단 살아야 꿈이라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는 법이다. 아무나 붙잡고 돈 따위는 무시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해봐야 당연히 들어 먹히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현실과의 타협의 이유가 돈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뭘 해야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지금 걷는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란 생각에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명확하게 갈망하는 게 뭔지는 떠오르지 않을 때, 막연한 가운데에서도 분명한 회의감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경우가 더 안타까울 수도 있다. 어쩌면 현실과 굳이 타협하지 않고도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인 데다가, 삶 속에서 이루고 싶은 커다란 목표 하나가 없다는 건 그만큼의 삶의 동력이 줄어드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분명 현실을 위해 뭔가 내려놓았는데, 정작 그게 뭔지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현실과의 타협 이전에, 대체 무엇과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현실과 맞바꾸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내려놓았는지를 알아야 다시 들어 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 가지 확실한 건, 좋아하는 게 없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즉, 그저 아직까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지 못 한 상황일 뿐이라는 거다. 그것을 찾는 건 결국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그 의지란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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