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서 진행신호를 기다리며 줄지어 가만히 서 있는 차량들을 사무실 통유리벽을 통해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하여 위화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변화가 너무 더뎌 시간이 정말로 흐르고 있는지 순간적인 착각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변화가 더딜 때는 정확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변화의 속도와 비례한다. 비록 그 속도는 절대적 사실이 아니라 상대적 느낌이겠지만, 그 느낌이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 관계 속에 시간의 바람직한 활용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지루한 일상 속에서 유달리 시간이 잘 흐르지 않던 순간에 대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의 일들이 단순히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겠지만, 이는 자못 1차원적인 해석이다.
좀 더 본질적인 이유는, 결국 그 경험들이 자신에게 별다른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해 쓸데없이 시간을 소모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경험을 할 때, 그럴 때 시간은 참 더디 흐른다.
변화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이자, 동시에 생동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어느 날 마음먹고 익숙해진 가구 배치를 열심히 바꾸고 나면, 별것 아닌 변화가 생동감을 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그런 변화가 심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가끔 루틴을 벗어나 일탈을 시도하고 나면, 분명 에너지를 소모했음에도 오히려 에너지가 생기기도 하지 않던가?
그래서 시간이 바쁘게 흘러갔다 느껴지는 날은 평소보다 더 많은 변화를 일궈낸 날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변화는 표면적으로는 그저 평소와 다른 몇 가지 일들로 비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일들을 통해 나타난 자신의 변화를 의미한다.
밀려 있던 과업들을 처리했든,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회포를 풀었든, 그 안에서 뿌듯함이나 행복감을 통해 느껴진 변화를 스스로도 감지한 것이다.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간다 느낄 때 우리는 시간을 죽여낸다는 표현을 쓴다.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을 누군가는 죽여내고 누군가는 좀 더 머물게 만든다. 그 차이가 결국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의 변화의 속도를 결정하고 흘러간 시간을 헛되이 느껴지지 않게 만들어 준다. 내외적인 성장이든,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시도든, 한 걸음 다시 내딛기 위한 재충전이든, 평소와는 조금 다른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