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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Sep 07. 2022

가면과 내면

누군가 솔직하다 말할 , 그것은 보통 평균적이고 상대적인 차원에서의 솔직함을 의미하지,  사람이 빈말이나 거짓말을 ‘전혀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 내면을  순간도 숨긴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많이 드러내는 이와  드러내는 이로 나뉘어 있는 것에 가깝다. 결국 이는 가면을 별로 쓰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런데 그렇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기에, 가면을 함부로 쓰는 건 더더욱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 가면을 쓰는 이유로부터 접근해 보면 어떨까?


여러 가지 표면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이유든 모아 놓고 보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일정 부분 가리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상황에 따라 적절한 모습을 연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지나치게 적나라한 표현이 될까? 부적절한 표현일 수는 있겠지만, 틀린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연기는 어떻게 포장한데도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그리하여 가면을 벗어던지고 드러난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되는 때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시점은 가면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때와도 일치한다.


부정적인 예상과는 달리, 그런 이들은 분명 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 타인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할 때나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낼 때나, 어차피 어떤 모습이든 받아들여줄 사람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의 끝에서, 그렇다면 굳이 가면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마주하게 된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당장은 가면을 쓰는 게 유리한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접근해야 하는 부분은 가면을 써야 하는가 이전의, 가면이 필요할 정도의 상황이 맞는지의 여부다. 즉 둘은 별개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가면의 필요성은 최소한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자는 말한다. 타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려면 어느 시점엔가는 가면이 필요하다고. 무슨 의미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마도 그렇게 가면의 필요성을 느끼는 많은 경우, 정말로 필요한 건 찾아 쓸만한 적절한 가면이 아니라 온전한 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다. 가면을 쓴 자신이 인정받을 때 인정받고 있는 것은 가면일까 자신일까? 대답은 자명한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그런 때마다 항상 가면을 쓰고, 항상 내면을 가리다 보면 언젠가는 한계가 찾아온다. 외면당한 내면의 목소리를 마냥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자아는 그리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각자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은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면을 쓰는 게 꼭 틀렸다고 잘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서두에 언급했듯 가면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적어도, 가면보다는 내면을 더욱 많이 드러내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한 번쯤 과감하게 가면을 벗어던져보면 이 의견에 생각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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