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납장을 정리하다가 눈에 띈 빛바랜 사진을 집어 들었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사진 속 옛날의 표정이 아니라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표정이다. 조금이라도 미소 지어지는 사진은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사진첩에 다시 끼워 넣게 된다.
거리를 걷다가 어디선가 한참 철 지난, 하지만 여전히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면 괜스레 아련해질 때가 있다. 특별히 아픈 과거가 얽힌 노래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도 잠시 발걸음을 멈춰본다.
감정은 의도적으로 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지나고 보면 어딘가에 담겨 있곤 한다. 꼭 사진과 같은 기록용 매체가 아니더라도, 멜로디에, 노랫말에, 편지지에, 심지어 그날처럼 똑같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는 눈송이에도 담겨 있다.
반복되어 익숙해지고 나면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첫사랑의 상처를 남긴 아련했던 감정은, 상처가 아물 때쯤 떠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언젠가 비슷한 감정을 마주해도 이전보다 덤덤하게 느껴진다. 마음은 경험과 함께 단단해지지만, 동시에 무뎌져 간다.
옛 기억의 매개체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지나간 감정을, 더없이 생생했지만 이제는 떠나가버린 감정을 일부라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잠시나마, 마음이 무뎌지기 전의 자신을 거울처럼 마주해보는 것이다.
결국 잊고 싶지 않은, 잊히지 않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가 남기고 싶었던 건 그때의 모습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일지 모른다. 언젠가 반가움과 애틋함 사이 어디쯤에서 그때의 감정을 끝자락이라도 다시 한번 붙잡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