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지하철역 벽면을 보니 한강의 잠수교에서 열리는 '뚜벅뚜벅 축제'에 대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무슨 축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불현듯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동적이기 그지없는 나의 성질 탓이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나는 그 충동에 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안다.
관계에 속한다는 건 거기에 조금이라도 얽매이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순간에 종속되지는 않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종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즉, 관계 속에서 자유는 얼마쯤 희생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관계와 일정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방향은 필연적으로 고독을 함께 추구하는 길을 가리키게 된다.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이를 알기에 되도록 관계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문제는 관계라는 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 같은 게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평소 자유를 희생해 관계에 충실하지 않으면, 고독을 원치 않을 때가 찾아와도 그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결국 관계의 유지란 고독을 예방하기 위해 자유를 투자하는 보험과 같은 게 아닌가 싶다. 얼마만큼의 자유를 투자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언제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안도할 수 있는 마음의 보험 말이다.
흔들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 축제가 아무리 즐거워도 어차피 함께가 아니라면 쓸쓸함이 더 클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충동으로부터 멀어지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집과 가족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무래도 나는 자유를 희망하지만, 소중한 이와 함께 하는, 조금은 소박한 자유를 희망하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