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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04. 2022

달리기

목적지인 지하철 역 앞에 도착하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달릴까? 말까? 지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나는 느긋함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모종의 사유로 평소의 출근 코스를 벗어난 상황이었기에 익숙지 않은 길이었다. 승강장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지하철이 언제 도착하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나는 계속 달렸다.


머리 위로 이정표를 확인하며 승강장으로 향했다. 이제 한 계단만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지하철이 막 도착했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 보이는 저 지하철을 꼭 타야 했다. 웬 사람들이 이리도 많이 내린 거야?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차량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사과의 말을 건네며 그 사이를 급하게 비집고 들어갔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나는 숨을 몰아 쉬었다. 숨이 찼지만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보람이 있음을 느꼈다.


많은 이들은 노력을 기울이기 전에 그 결과를 미리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개 알 수 없기에, 헛된 노력을 기울이지 않겠다는 판단 끝에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분명 성취는 노력한다고 필연적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열심히 달렸음에도 눈앞에서 지하철을 놓치면, 괜히 힘들여 달렸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실패에 대한 경험이나 상상이 다음 시도를 망설이게도 만든다.


하지만 역으로, 달리지 않았다면 절대로 타지 못했을, 달리지 않았다면 타지 못 했을 거란 사실을 알지도 못 했을 그런 지하철도 있는 법이다. 오늘 아침 내가 탔던 지하철이 바로 그랬다.


만일 달리지 않았다면 안타깝게 지하철을 놓친 상황인지도 모른 채 무심히 다음 지하철을 기다렸을 거다. 어차피 너무 늦어 달려 왔어도 타지 못 했을 거라 속으로 합리화하며.


결국 뭔가에 도전하여 매진한다는 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지하철을 타기 위한 달리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시간을 확인해보니 다소 여유가 있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혹시 건물 엘리베이터에 앞에 줄을 길게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다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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