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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12. 2022

객관적

객관적이라는 단어는 손님 객(客), 볼 관(觀)이라는 한자로 이루어진다. 사안에 대해 손님이 되어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로 쓰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사물이나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비교적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안에 대해 우리는 당사자가 되어 그 안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렇게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자주, 쉽게 왜곡된다. 단지 왜곡을 접하면서도 왜곡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가 많을 뿐이다.


특히나 스스로를 바라볼 때 왜곡은 극에 달한다. 거울로 보는 자신의 모습은 좌우가 바뀌어 실제로 타인이 바라보는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라고 한다. 동영상 따위에 녹음되어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는 말할 때 들리는 소리와는 또 다르게 느껴진다. 감각을 이용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들도 왜곡의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마당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특징은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를테면 타인들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자신을 완벽주의자라 여기는 이도 있을 거다. 사실이든 아니든 입증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가능한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난제로 다가온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스로를 얼마나 왜곡하여 바라보고 있는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그렇게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근거 없는 확신, 또는 잘못된 근거에서 비롯된 확신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심지어 인정의 끝에 다다른 결론조차 어디선가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왕도도 없다. 그저 부단히 살피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나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부작용도 있다. 분명 자신을 비교적 정확히 바라보는 데에 성공했음에도 그마저 왜곡되었을 수 있다고 의심하여 지나친 자기검열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이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시도의 당위성을 해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어디까지나 행위에 대한 주의사항이지, 금지사유가 아니다.


결국 자신과 관련된 사안, 또는 자신 그 자체에 대해 살펴볼 때는 더욱 객관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고 바라보는 관점, 바로 손님으로서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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