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양의 물을 지나치게 큰 그릇에 담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 자체를 달성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쓸데없이 무거운 그릇도 함께 전달해야 하기에 비효율적이다. 또한 그릇만큼의 물이 없어 빈 공간이 커 상대방이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다.
반대로 많은 양의 물을 지나치게 작은 그릇에 담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흘러넘친 물은 버려지기에 더 담으려 해도 딱 그릇만큼의 물만 전달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적절한 그릇 없이는 아무리 많은 물도 결코 한 번에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가운 물을 뜨거운 그릇에, 혹은 뜨거운 물을 차가운 그릇에 담으면 어떨까? 그릇의 온도로 말미암아 물의 온도 역시 원래와는 달라지고 만다. 전달하고자 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 상대방이 그릇에 담기 전의 물의 온도를 알기는 어렵다.
마음은 형태가 없다는 점에서 마치 물과 같다. 그래서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그릇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같다. 아마도 그 그릇은 말과 행동, 글, 선물 등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련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전해지길 기대하곤 한다.
그런데 마음에 비해 너무 큰 그릇은 상대방에게 착각을, 그리고 기대와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그게 일방적인 착각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일 수도 있겠지만, 그 책임여부와는 별개로 어쨌든 마음이 잘못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다.
또한 그릇이 작으면 아무리 큰 마음도 오롯이 담아낼 수 없어, 결국 그만큼 전달할 수도 없다. 자신의 커다란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방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면, 그릇이 너무 작아 흘러넘친 마음이 많았던 건 아니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온도를 그대로 전하고 싶다면 그와 어울리는 온도를 지닌 그릇에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에 따라 온도가 달라진 물처럼, 자신이 지닌 마음의 온도를 상대방이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못 단순한 결론이지만, 결국 가장 적절한 그릇은 마음의 양과 온도가 함께 일치하는 그릇이다. 그리고 그 그릇은 다름 아닌 솔직한 표현이다.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많은 경우 그 원인은 잘못된 그릇의 사용, 즉 솔직함의 부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