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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7. 2022

시간의 문제

지하철을 통해 등하교나 출퇴근을 하다 보면 유난히 많은 이들이 타고 내리는 역이 제법 많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몸을 싣고 있던 사람이든, 이제 몸을 싣는 사람이든, 안 그래도 붐비는 아침저녁시간 객차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모두 함께 고역을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그런 역이 자주 다니는 코스에 있다면 이 사실은 자신에게 있어 예고된 고난이 된다. 오늘도 이 역을 지나칠 때는 좀 힘들겠지.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그저 언젠가 러시아워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당장은 부질없는 소망을 되뇌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문제는 이런 고난을 분명 미리 알고 있음에도 피할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은 없다는 거다. 고작해야 더 이른 시간에 지하철을 탑승하는 정도. 또한 이 해법은 분명 효과가 있겠지만, 대신 수면시간을 줄이는 또 다른 고난을 야기한다.


머리를 싸매고 방법을 찾아보았자 별다른 지름길이 없는 문제도 분명 있다. 당연히 그런 문제는 깊이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시간낭비일 뿐이다.


결국 시간의 흐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저 문제의 소용돌이 안에서 단단히 옷깃을 여미고 버텨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향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자못 실망스러운 사실이 도리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요구되는 건 기껏해야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객차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든지, 자신이 빠져나오든지 언젠가는 고난의 끝이 있을 테니까.


문제에 부딪혀 삶이 이전처럼 순탄치만은 않다고 느낄 때,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도 분명 있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언제 끝날지 알 수는 없어도, 어쨌든 지금 겪고 있는 문제가 바로 시간의 문제이고, 그렇기에 잘 버티고 있고, 앞으로도 잘 버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때가 있다.


모든 문제에 해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해법이 없는 문제라고 해결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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