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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30. 2022

감정의 저장

가끔, 느끼고 싶지만 자주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오면, 지금의 감정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아쉬워지고는 한다. 오랜 친구를 만나 반가운 마음이든, 어두운 밤거리에서 느껴지는 고독이든, 희소한 감정이라면 뭐든.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정은 쉽게 사라진다. 순간에 머무르다가 이내 휘발되어 버리고, 강렬하게 느꼈던 감정도 금세 여운만이 남아 주변을 맴돌다 그마저 이내 자취를 감춘다.


사라져 버릴 감정이 못내 아쉬워 울적해질 때가 있다. 비슷한 사건을 만들어낸다 해도 그때와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는, 감정이 갖는 일회성에 슬퍼질 때가 있다.


사진이나 일기와 같은 기록은 이런 감정을 조금이라도 저장하기 위해 남기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안에 꾸역꾸역 감정을 담아 본다. 나중에 돌아볼 때, 그때의 감정이 일부라도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그런데 실체 없는 감정이 어딘가에 머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존재를, 마치 바보에게는 보이지 않는 임금님의 옷처럼 존재한다 말하며 거짓 위안에 젖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감정은 실제로 그 안에 담기는 게 아니라, 그저 담겨 있다는,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던 그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다는 믿음이 만드는 일종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물음과, 물음의 사실여부에 대한 판단이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환상에 불과한들 좀 어떠랴. 그 환상이 그때의 그 감정을 불러낼 수 있다면, 비록 환상일지라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펼쳐 본 기록물 안에서 여전히 그때의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감정은 그 존재를 자연스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접어 둔 기록물 안에서 잠시 쉬고 있을 뿐, 사라지지 않은 채 나중을 기약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감정을 저장하고 또 꺼내본다.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는 한, 그렇게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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