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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n 30. 2023

글감과 생각

글의 내용, 구성, 어휘력 등 '질'의 문제를 차치하고, 글의 존재 자체에만 주목했을 때, 가장 쓰기 쉬운 글은 다름 아닌 자신의 경험을 담은 글이다. 이를 테면 방금 전 겪은 일을 기록하는 글은 누구나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다. 그저 기억을 조금 더듬어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글은 당연히 희소성이 낮다. 굉장히 특별한 일이 아닌 한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렇기에 당연히 누가 써도 비슷한 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에 대한 글이라 할지라도 객관적 사실은 간단하게 축약하고 주관적인 생각을 많이 집어넣을수록 글의 희소성은 높아진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해서 꼭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희소성만을 좋은 글의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기는 곤란하겠지만, 창작자로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글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이 분명히 담길 때 비로소 창작물로써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이다.


결국 글감이란 별 게 아니다. 굉장히 특별한 경험, 특출난 아이디어, 진지한 주제만이 글감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곧 글감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글감을 찾는 행위에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완성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바로 생각이다. 어떻게든 많은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렇게 정리한 것을 텍스트로 잘 표현해 낸다면 뭐든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때로 글이 손에 잘 잡히지 않을 때면 나는 그저 더 많은 생각을 떠올려본다. 그 생각들은 이내 글감이 되고, 글감은 이내 글이 되며, 결국 그 글 안에서 한 번 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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