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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l 20. 2023

소모품

보통 쓰는 만큼 줄어드는 물건을 소모품으로 정의한다. 대개 볼펜이나 종이와 같은 사무실용품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런 것들은 쓰다 보면 언젠가 없어지고 버려지는 게 당연하고, 또 당연하게 여겨진다. 또한 조금 더 범위를 넓혀보면, 이를 테면 여러 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도 쓰는 만큼 그 수명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실상 대부분의 물질은 소모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람의 신체는 어떨까? 많이 사용하면 발달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많이 사용하면 무리가 와서 오히려 별로 사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빨리 한계가 찾아온다. 어깨를 혹사당한 야구선수나 무릎에 물이 차서 계단을 걷기도 힘들다는 농구선수 등,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비록 물건은 아니지만, 쓰는 만큼 노화하여 결국 그 수명이 줄어든다는 점에서는 신체 역시 소모품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신체 중 두뇌는 예외다.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활동, 이를 테면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두뇌가 더 빠르게 노화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많이 사용할수록 더욱 그 역량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것을 느낀다. 지치기는 하지만, 그것이 손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사용에 따른 결과물의 질적인 측면에는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양적인 측면에는 한계가 없다. 게다가 결과물의 표현 범위 역시 실상 무한한 영역에 걸쳐 있다. 한 마디로, 두뇌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언젠가 사용하지 못하는 시점이 올 거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 시점은 오로지 죽음을 맞이할 때뿐이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생각을 많이 하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몸도 약해져서 한계가 빨리 찾아올 것 같다고. 하지만 이는 많고 깊은 생각으로부터 찾아오는 스트레스의 관리능력, 그리고 신체관리능력의 부족으로부터 기인한 결과이지, 두뇌의 과도한 사용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연구원이나 교수 같은 이들의 수명은 평균수명보다 유의미하게 짧아야 할 것이다.


간단하고 단순하게 적어놓으니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데, 아무리 써도 소모되지 않는다는 건 굉장한 강점이다. 그러니까 물건이든 신체든 많은 시간을 들이고 격하게 사용하면 분명 언젠가 소모품처럼 한계를 맞이할 수 있는데, 두뇌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 강점도 있는데, 두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용하고 싶은 만큼 사용하기 쉽다는 거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생각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던 적이 있다. 사실은 비단 글을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지어 육체활동을 잘하기 위해서도 수많은 생각은 필요하다. 두뇌의 사용이 소모적인 행위가 아닌 이유는, 이렇게 쓸데가 많기에, 그 과정에서 곤란함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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