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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Sep 18. 2023

소심했던 시절

미성년자 시절의 나는 지나치게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다녔던 피아노학원 앞 문구점에 작은 오락기가 한 대 있었는데, 몹시 하고 싶었지만 학원을 그만둘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의자에 앉을 용기를 못 냈었다. 그 이유가 가관인데,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많은 사람의 시선이 두렵고 부끄러워서,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지 못 할 이유를 찾아냈던 것이다.


새로운 학년으로 진학하고 나서 짝꿍의 같이 하교하자는 말에 동의하고 난 다음, 알고 보니 돌아가는 길이 달랐는데도 ‘나는 여기서 다른 길로 가.‘ 라는 말을 꺼내지 못해 10분쯤 더 걸리는 거리를 빙 돌아서 집으로 갔었다. 거짓말 같이 들릴지 모르겠는데 정말 그 해 꼬박 1년 내내 그렇게 돌아서 하교를 했다. 만약 그 친구와 이듬해에도 같은 반이 되었다면 아마 그 길을 1년을 더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는 버스를 타고 노선도를 확인한 다음에야 잘못 탔다는 사실을 알았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벨을 눌러서 내리면 될 것을, 그렇게 행동하면 주변에서 ‘쟤, 바보같이 버스를 잘못 탔나 봐.’ 하고 비웃을까 봐 일부러 4~5정거장쯤 이동한 뒤에야 내려서 갈아탄 적도 있다. 내리면서도 혹시 누군가 속으로 날 비웃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무려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런 성향은 그다지 변하지 않아,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서 야심 차게 노래를 선곡해 놓고는 막상 때가 되자 내가 예약하지 않은 척 부르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기가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아마 친구들의 노래를 듣고는 내 실력을 드러내 보이기가, 또 조금은 마이너했던 나의 선곡을 들키기가 싫었던 것 같다. 아마 어떤 친구는 ‘예약하는 거 뻔히 봤는데 왜 아니라고 하지?’ 하며 속으로 이상하게 여겼을 거다.


이 정도면 소심왕에 도전해도 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 우스운 기억들이다. 별의별 이유를 만들어가며 타인 앞에서의 행동을 제한시켰었다니.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군대를 갔다 와서, 그리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이런 성향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냥 너무 바보 같으니 언젠가부터 그러지 말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나이 먹고 대범함 내지는 뻔뻔함이 커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남 눈치 안 보고 혼자서 하기‘ 의 상당한 경지에 오른 상태다. 지난번에는 전화로 혼밥손님도 환영한다는 답변을 듣고 고기뷔페에도 혼자 다녀왔다. 혼자 온 손님은 나밖에 없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양껏 먹다 왔다. 당연히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 나를 신경 쓰는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과감하게 말해보자면, ‘소심한 태도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 여겨도 좋을 것 같다. 만일 이런 태도를 높은 외향성이라고 한다면, 나를 외향성의 신봉자라고 보아도 좋다. 누구나 자기 할 말은 언제 어디서나 똑 부러지게 하고,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소한, 그런 모습을 가지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때가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내 예상으로는, 아마도 내 자녀에게도 언젠가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되면 나는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려 한다.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 한, 타인의 시선 따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거다. 그래서 나보다 훨씬 빨리,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시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거다. 필요하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한바탕 춤을 추고 난 다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거다. 견고한 자아의 발견은 바로 그 사실을 인지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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