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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n 01. 2023

허무함은 왜 찾아올까

중학생 시절의 나는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주말이 되면 밤을 새우다시피 한 적도 많았고, 기다리던 방학이 찾아오면 열 시간이 넘게 식음을 전폐하며 게임을 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틈만 나면 게임을 했고, 틈이 부족하면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충분한 틈을 확보했다. 나의 고집을 잘 알던 어머니께서는 이런 나를 말리느라 타일러도 혼내도 보았지만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었다. 아무리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아도 게임에 대한 나의 중독은 심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해졌다.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만큼 게임에 관한 나의 역량은 높아졌지만, 그게 결국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 번 떠오르자 지속적으로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한 일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괜찮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래서 게임에 대한 기억을 나름대로 괜찮게 간직하고 있다. 어쨌든 결과가 나쁘진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대학교 시절에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빠져들었다. 매일 같이 당구를 치고, 노래연습장에 가고, 술을 마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여전히 나의 고집을 잘 알고 있던 어머니께서는, 이런 나에게 가끔 따끔하게 한 마디 할 뿐, 더욱 머리가 굵어진 내게 더 말해봐야 시간낭비라는 사실 역시 여전히 잘 알고 계셨다. 그렇게 나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 계속 비슷한 패턴의 삶을 반복했다. 군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언제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걸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심히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는 또 허무주의가 찾아왔다. 이전에는 즐겼던 것들이 이전만큼 커다란 의미를 갖지는 않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하지만, 이전처럼 무턱대고 아무 생각 없이 놀게 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한 일이다. 나는 나름대로 구멍 났던 학점을 메꾸기 위해 노력했고, 나름대로 괜찮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과거의 펑펑 놀러 다녔던 시절에 대한 기억도 나름대로 괜찮게 간직하고 있다. 어쨌든 결과가 나쁘진 않았으니까.


회사를 다니면서는 뜬금없이 온라인 카페활동에 미친 적이 있었다. 카페활동은 사실 나의 인생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는데, 바로 이때 글을 쓰며 좋은 반응들을 얻어 글에 대한 용기를 얻었고, 결국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페활동 역시 이걸 계속해서 남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허무함에 지금은 손을 놓은 상태다.


그렇다. 모든 것들이 결국엔 언젠가 허무해지곤 했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처음에는 뭘 하든 허무해질 수밖에 없다는, 그러니까 허무주의가 이론상 옳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허무함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도, 사람들과 한없이 노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도, 어느 카페의 유명인사가 되어 지박령처럼 붙어 있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 사실을 깨닫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적의 설정은 중요하다. 목적이 없는 채로 일단 뛰어들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금의 행동이 목적의 달성을 위한 단계에 해당이 되는지, 아니면 그저 목적의 달성을 방해하는 요소에 불과한지 따져볼 수가 있다.


물론 모든 행동들이 직접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있을 필요까지는 없다. 이를 테면 이름난 축구선수가 되려는 이가 하루쯤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푼다고 해서 그 행동이 꼭 목적달성의 방해요소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휴식이 결국 에너지를 회복하고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다시 성취를 향할 수 있다면 말이다.


허무라는 감정이 자주 느껴질 때, 심하면 삶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질 때면, 허무함은 결국 목적성 없는 행위를 할 때나 목적 자체가 없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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