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우리는 스스로도 실행하기 어려웠던 내용이 담긴 조언을 누군가에게 건네기도 한다. ‘정작 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행동을 조언이랍시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싶다가도 이내 다시 마음먹어본다. ‘너도 못 했으면서 왜 나 보고는 그렇게 하라는 거야?’ 반론에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래도 염치없이 말을 이어간다. 따지고 보면,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언을 내밀 수 있는 자격의 유무를 결정하는 건 아니다. 비록 나는 못했지만 너는 꼭 할 수 있길 바란다는 진심이 있다면 충분한 것이다.
이를 테면 이별의 아픔으로 한동안 밤을 지새웠던 이가, 똑같은 일로 실의에 빠져 무기력해진 친구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빨리 잊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다. 비슷한 상황에서 쉽게 행할 수 없었던 과거가 분명히 떠오르지만, 그래서 지금 앞에 앉은 이에게도 쉽지 않은 일일 거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조언을 하는 이의 마음의 밑바탕에는 어리석었던 자신에 대한 후회가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마음을 담아 진지하게 조언을 건넬 수 있는 건 아닐까? 바보같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지 않도록, 자신과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 후회가 너무나 커서, 상담 따위를 요청받지 않았음에도 가까운 이에게 주제넘게 다가가게 될 때도 생긴다. 그리고 뭔가의 이유로 가까운 이의 행동에 상당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조언은 점차 조언보다 충고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충고가 마땅한 근거를 두르지 않고 반복된다면, 충고보다 잔소리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부모와 자녀 이야기다.
그럴 때 부모는 아무리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실에 대한 조언이라 할지라도 경험이나 합리적인 생각을 꼭 곁들여 말해줄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도 어렵게 느껴졌던 내용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는 쉽게 이해되었던 내용이라 할지라도 마냥 강요해선 안 된다. 그러니까 자녀를 설득할 생각을 해야지, 명령을 내려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반면 자녀는 그런 조언에 대해 깊게 잘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그저 잔소리로 느껴지는 내용이 결국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 역시 부모님의 이야기를 항상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 잔소리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지혜가 담긴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자녀가 크면 나도 언젠가 조언을, 충고를, 잔소리를 하게 될 것이고, 자녀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때로는 경청하고, 때로는 흘려듣고, 때로는 귀찮아할 것이다. 그때 나는 이 글의 골자를 말해줄까 한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녀에게라도 함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부모의 모든 이야기를 마냥 무시해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서로가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