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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04. 2023

우리 애기, 춤춰볼까?

혹시 명절이나 생일잔치가 열렸을 때 등 친척의 집에 많은 이들이 모인 날, 아직 학교에 다니지도 않는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자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애기, 춤 잘 추잖아. 여기서 한 번 춤춰볼까?"

또는

"OO이, 동요 잘 부르잖아. 그 왜, 가사에 강아지 나오는 거 말이야. 노래 불러볼래?"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부모만 있는 편안한 집에서와 달리,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어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이 공간에서 쭈뼛거리기만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으로 인해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 이어지다가 이내 누군가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린다. 심한 경우 아이가 울어버려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적에는 이런 장면을 목격해도 그러려니 하다가, 좀 더 나이를 먹고 나서는 대체 왜 자녀에게 저렇게 부담을 주며 무리한 요청을 하는지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부모에 대한 반발심이 커지고부터였던 것 같다. 부모의 이기적인 마음에 아이들만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게 아닌가, 하고 자녀에게 조금 과한 감정이입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를 갖고 나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 아이가 일종의 개인기(?) 같은 것들을 구사할 수 있게 되고 나서야 그랬던 부모의 마음을 상당히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에 춤을 추고 동물 울음소리를 흉내 내던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 마음을 이제는 똑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아이에게 참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 보라는 등, 과거의 내가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다른 부모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나는 부끄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아, 부모란 이런 거구나, 부모가 되고 나니 그래도 좀 알겠구나, 하고 말이다.


물론 이런 행동은 여전히 부모의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지 못한 경솔한 모습일 수 있다. 단지, 이전과는 달리 왜 다른 부모들이 이런 행동을 했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지금의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아내와 나만 보기에는 아깝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이렇게 이해가 가는 만큼, 그만큼 좀 더 부모의 마음을 갖게 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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