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이 출몰하는 세상

빈말을 극혐하는 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어쩔 수 없이 빈말을 섞는 게 더 좋은 상황이 발생한다. 나는 그런 그런 모든 상황에서 굳이 나의 생각을 고집하고 표현하는 사람은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괜히 고집부리다가 손해 보는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

고백하자면 얼마 전에도 빈말을 한 적이 있다. 직장 상사가 다른 팀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하며 내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기에 일종의 아부성 발언을 섞어서 그렇게 되면 아쉬울 것 같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이렇게 빈말을 할 때면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낀다거나 괴리감 때문에 자책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을 속였다는 불편한 마음이 잠깐 스쳐 지나갈 정도는 된다.

빈말의 단점 중 하나로 신뢰의 상실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빈말은 하도 자연스럽게, 다방면으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어서 사람들에게 쉽게 착각을 유발한다. '이렇게 말하던데 어때?' 라는 질문에 '그냥 빈말이겠지.' 라고 답변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너무나 흔한 대화다. 이렇게 흔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사람들은 좋은 말을 듣고도 정말로 사실인지 얼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아무리 가까운 관계에도 빈말이 사용되지 않는 예외가 없다는 점 역시 이 단점을 크게 부각한다.

하지만 반면 빈말이 아예 없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모든 이들이 마음속에 생각보다 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있다. 그것을 타인을 향해 가감 없이 드러내야만 한다면 많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빈말이 있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보다 작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은 슬쩍 해본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직접 'OO씨 싫어요.' 라고 했을 때에도 당사자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 있다면 빈말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물론 현실성은 없는 얘기다.

어쨌거나, 적어도 무의미하고 필요 없는 상황에서의 빈말이라도 갈수록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되 솔직한 생각과 마음을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