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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04. 2023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

우리가 말하기나 글쓰기에 쓰는 표현은 스스로 창조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새롭게 느껴져도 이미 외부에 존재하던 표현을 끌어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근원은 각각의 표현이 만들어졌던 시공간에 있다.


판단을 내릴 때 기준이 되는 경험이나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새로운 통찰이 떠오르는 듯해도 그 통찰의 뿌리는 결국 외부로부터 뻗어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히 주체적일 수 없다. 너무나 커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는 누군가 만든 생각의 틀 안에 머문다. 완전히 새로운, 틀을 깨는 생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반론은 의미가 없다. 어차피 깨진 부위는 다시 합쳐져 하나의 틀이 되고, 결국 다시 그 위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현상을 인식하고 머릿속에, 혹은 가슴속에 있는 그 무엇을 통해 판단을 거쳐 결과를 도출한다.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현상에서 판단,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내면에 저장된다. 현상의 반복 속에서 전체적인 과정은 하나의 체계로 구성된다.


우리는 이미 판단을 끝냈던 경험이 있는 현상을 처음인 듯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계가 잡힌 현상에 대해서는 결과를 더 빠르고 쉽게 도출한다. 외부에서 판단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을 들여오지 않는 한, 이 과정은 언제나 비슷하다. 효율적이지만 큰 틀에서, 이전에 걸었던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경험이 많아질수록 변화는 줄어든다. 모르는 새 보수적 색채를 띠게 된다.


경험이 많아졌다는 것은 곧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스레 생각은 굳어간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고의 소유자라 해도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굳어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를 암묵적 합의로 꼰대라 부르기로 했다. 그렇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꼰대가 되는 것과 같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꼰대가 된다. 슬프지만 이 사실을 부정할수록 오히려 꼰대에 가까워진다.


이를 역행하기 위해서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아무리 많이 경험했던 현상도 처음인 듯 받아들여볼 필요가 있다. 처음인 듯 판단의 과정을 거쳐 결과를 도출하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낭비를 인내할 수 있을 만큼의 간절함과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어떻게든 깨닫는다면 분명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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