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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05. 2023

일기는 헛소리로 가득하게 마련

영화 [브리짓존스의 일기] 1편 마지막 부분에는, ‘일기는 헛소리로 가득하게 마련’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오해할까 봐 얼른 말하자면, 이 글은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일기 이야기다.


일기는 정말 헛소리로 가득할까?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내면이 전적으로 생산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만 한 사람은 없다. 그 반대에 위치한, 헛소리에 가까운 내용 중 외부로 드러나는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래서 가장 솔직하게 내면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은 혼자만이 간직할 수 있는 일기일 테고, 그렇다면 거기에 헛소리의 비중이 높은 건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비록 그게 사실이더라도 사실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헛소리로 가득하더라도 일기가 존재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일기에마저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없다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의 찌꺼기를 어디에 배설할 것인가? 답답하고 막혀 해소할 수 없는 생각과 마음을 어찌할 것인가?


건강한 육체에 가장 중요한 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결국 잘 먹고 잘 싸는 거다. 비슷한 의미로, 건강한 정신에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잘 떠올리고 잘 배출하는 거다. 일기는 바로 그 배출의 창구가 되어준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진실을 모두 내뱉고 토해낼 수 있다.


그래서 일기장 속 내용물은 더럽고 천박하지만 깨끗하며 순수하다. 아니, 어쩌면 그 안에는 불결과 청결의 잣대로 감히 평가할 수 없는, 한 차원 더 높은 원초적인 본능에 가까운 무엇이 담겨있을지 모른다.


때로 우리는 그 어떤 거름망도 거치지 않은 자신의 속마음을 돌볼 필요가 있다. 일기는 글쓴이의 생각을, 마음을, 정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럴 때 일기는 단순한 기록지가 아니라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거기에 비치는 건 여전히 주관적인 모습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가면을 벗어던진 최대한의 객관적인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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