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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28. 2023

사랑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때로 누군가는 상대방의 사랑의 크기가 자신보다 작지는 않은지, 혼자만 일방적으로 커다란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한다.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는 이에게는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하려고도 한다. 사랑의 크기를 궁금해하는, 혹은 보여주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랑의 크기를 수치화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수치를 통해 감정을 계산하고 재단하고 싶다 어리석게도 바란 적이 있다. 비단 나뿐이 아니라, 아마도 사랑 앞에 괴로워했던 이에게는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대체 사랑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많은 이의 바람에도, 애석하지만 사랑의 크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저명한 작가 톨스토이는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명언이 그렇듯 사실 여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말에 조금이라도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아마도 사랑의 크기는 얼만큼인가 하는 질문의 답에도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까?


사랑이 자기희생이라는 말은, 사랑을 위해 불편하고 어려운 무언가를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사랑은 사랑의 주체에게 더 넓은 이해심과 포용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랑을 안고 있는 이는 본능을 거스르는 도전을 요구받는다. 그 도전은 결국 고통이기에 누구나 고통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한계를 갖는다.

 

실제로 사랑을 위해 우리는 제법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고, 또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위해 어느 정도 감내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과 같다. 이는 아름답고 숭고한 의미이지만, 동시에 사랑의 한계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시사한다.


여기서 역으로 접근해 보자. 그러면 사랑을 포기하고 싶을 때, 즉 존재와의 이별을 떠올릴 때는 언제일까?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낄 때가 아닐까?


결국 사랑의 크기는 그 한계점만큼, 희생하고 감내할 수 있는 만큼의 크기와 같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사랑의 크기가 무한하다고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려면,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모두 희생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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