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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Dec 05. 2023

[소설] 새 해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3일 전 아침이었다. 충분히 각오했음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식이었다. 언니가 간밤에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출근 준비를 하던 나는 못 가게 된 사정을 잘 말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백미러를 보니 늘 매달려 있던 언니와 나의 사진이 담긴 로켓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결국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운전대에 고개를 묻은 채 한참을 흐느꼈다.



몇 달쯤 전 내가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을 때였다.

"야, 우리 바다에나 가자."

언니는 원래 뜬금없는 얘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언제 들어도 적응은 잘 안 된다.

"갑자기? 이 새벽에?"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새벽 2시쯤이었을 거다.

"뭐 어때,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원래 작업하던 거에 꽂히면 우리 둘 다 밤도 잘 새우잖아."

"내가 요새 밤샌 적이 얼마나 있다고 그래?"

"그러지 말고 그냥 가자, 응?"

사실 언니의 말대로 우리는 밤을 새우면서까지 작업을 하는 날도 많았다. 당시의 나는 슬럼프에 빠져 그럴 일이 없었지만.

나는 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차에 올라탔다. 단지 운전도 안 할 거고 잠이 오면 그냥 잘 거라고 말했다. 언니는 상관없다며 알아서 하라고 대답하고는 콧노래와 함께 시동을 켰다. 나는 언니와 대화를 나누다 금세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어나 봐. 다 왔어."

가까스로 졸린 눈을 뜨자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를 뚫고 바다와 백사장이 바로 눈앞으로 들어왔다.

"나가 보자. 곧 일출시간이래!”

"일출? 벌써?"

새벽이라 공기가 꽤 차갑게 느껴졌지만 그만큼 정신이 또렷해지는 듯했다. 한동안 바다를 보며 함께 서 있는데 언니가 말을 꺼냈다.

"사실 너 요새 걱정도 많고 힘들어 보이길래 같이 기분전환이나 해볼까 해서 왔어."

"내가? 별로 안 힘든데..."

"야, 내가 널 모르냐? 예전엔 같이 밤새면서 라면도 먹고 대화도 자주 했는데 요샌 그런 적이 없잖아. 저번에 공모전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고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말을 들을 때에는 반감이 들어서라도 화를 내며 부정하던 나였다. 하지만 언니가 말할 때는 그럴 수가 없다. 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 아직 젊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다시 힘내 보자. 나도 돌아가면 굉장한 걸 그려낼 거야. 아, 저기 해 올라온다."

언니의 말대로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해일뿐인데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새 해 복 많이 받아!“

언니가 말했다.

“무슨 말이야? 지금 9월인데?”

“그 새해가 아냐. 방금 새로운 해가 떴으니 오늘의 새 해의 복을 받으라는 얘기지.”

웃으며 말하는 언니를 보고 나도 피식 웃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언니의 위로는 언제나처럼 내게 정말 큰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언니와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건 그로부터 이주일 뒤였다. 바닷가에서 돌아온 뒤로 거짓말처럼 부쩍 글이 잘 써져 집에서 한창 작업을 하며 언니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날 밤의 일이었다.

교통사고였다. 여러 차례에 걸친 큰 수술이 이어졌다. 언니가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입원한 뒤 담당의와의 면담이 있었다.

“보호자 되시나요?”

“네, 동생이에요.”

“혹시 부모님은…?”

“없어요. 제가 유일한 가족이에요.”

의사는 내 가족사를 말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던, 익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시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언니는 여전히 혼수상태이고, 깨어나실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여기를 보세요. 이 부분이 전두엽이라고 하는 곳인데, 여기에도 손상이 있고…”

그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한 원망에, 병원비 때문에 언니 곁에 24시간 붙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담담한 의사의 말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실감했다. 세상의 모든 슬픔과 아픔이 내게로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병원비 때문에 평일에는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고, 주말엔 깨어나지 않는 언니 곁에서 글을 썼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보험금이지만 병원비에 보탤 수 있어, 조금이나마 함께 있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힘든 나날이었지만 언니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놓을 수 없었다. 놓고 싶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웃어줄 것 같은 언니를 두고 일어날 때마다 내 가슴은 미어졌다. 병실문을 나서다가도 혹시 언니가 깨진 않았을까 뒤를 돌아보며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서 싸늘하게 식은 언니의 시신을 마주해야 했고, 울다 지쳐 기진맥진한 채로 장례식을 치러야 했으며, 오늘 늦은 새벽에야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은 너무나 쓸쓸했다. 차갑고 참혹한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곳곳에 스며 있는 언니의 흔적에 또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혹시나 언니가 깨어나 돌아올지 모른다는 미련한 생각에 계속 들어가지 않았던 작업실의 문을 이제야 열어 보았다. 작업장 선반 위로는 쓰다 만 물감과 물통이 놓여 있었고, 맞은편 창문 앞에는 천으로 가려진 이젤과 의자가 보였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이곳의 주인이 없다는 걸 빼면. 언제나처럼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던 언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이젤 앞으로 다가갔다.


이젤을 덮고 있던 천을 치우자 그날 아침 함께 보았던 풍경이 펼쳐졌다.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로 솟아오르던 태양이었다. 언니의 유작 속 태양은 내가 봤던 그 어떤 태양보다 더 찬란하게 빛을 내며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리고 백사장 위로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이 보였다. 언니를 향해 손을 내밀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새 해 복 많이 받아, 언니. 사랑해.”

어느덧 등 뒤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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