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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Sep 22. 2023

<소설> 여행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분명 서로 잘 맞았다. 거기에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잘 맞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우리는 잘 맞았다. 거기에 무슨 부연설명이 더 필요할까? 내 말의 의미를 아마 많은 이들이 이해하리라 믿는다.


고백하자면, 그녀가 가끔 이런 말을 했던 적은 있다.


“어디 신나는 곳 좀 없을까? 만나서 가는 데가 항상 너무 익숙한 곳들 뿐인 것 같아.”


그 말에 그러면 네가 한 번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되물으면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답하곤 했다.


“그러긴 또 귀찮고! 가족처럼 편한 것도 괜찮지, 뭐.“


사실 나도 그게 귀찮다. 이것만 봐도 우리가 잘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평온함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녀가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말했을 때, 나는 고민 끝에 그녀를 위해 한 번 양보하기로 했다.


”가면 분명히 신날 거야.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어떤 시간보다 더!“


그렇게 말하는 듯 어떤 확신에 차 있던 그녀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떠나게 되었다.




자리에 누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곯아떨어졌던 것 같다. 숙소는 편안한 밤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바쁜 일정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아침 일찍 제주도에 도착한 피로를 상당히 풀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가 오전 10시쯤 함께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는 걸어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조금 걷자 시원한 바닷가가 나타났기에, 돌아서 가는 길이었지만 굳이 바닷가를 따라 걷기로 합의했다. 하늘은 파랬고, 바다는 그보다 더 파랬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따뜻한 공기가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어때?”

“뭐가?”


그녀의 주어 없는 질문에, 시선을 그녀로 향한 채 내가 되물었다.


“듣는 사람이 마음대로 주어를 선택할 수 있는 질문이야. 어때? 풍경이든, 느낌이든, 기분이든, 뭐든.”

“생각보다는 즐겁네… 여행이란 것 말이야.”


나는 다시 시선을 바다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하늘도, 바다도 아름답고, 또 날씨도 딱 좋고, 이렇게 함께 있는 것도 좋고. 뭐, 우리는 어디에서도 즐겁긴 했지만 말이야. 그렇지 않아?“

”그래, 좋았지.“


그녀는 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는 또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말이야, 여행이 즐거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아닐까? “


그녀는 나와 눈을 잠깐 마주친 다음, 고개를 돌려 바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향했다.


”따로 있다는 게 무슨 뜻인데?“


궁금해진 내가 웃음기를 띠며 묻자 그녀가 답했다.


”그저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어서, 그래서 그만큼 지긋지긋했던 일상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아닐까 해서. 그러니까 꼭 햇살 좋은 바닷가에 있지 않더라도, 이렇게 날씨가 포근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걸 먹고 새로운 공기를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겠냐는 거지.“

”그럼 굳이 제주도까지 올 필요도 없었던 거 아냐? 집에서 좀 떨어진 장소를 아무 곳이나 정해서…“

”…이렇게 마음먹고 떠나오지 않으면 계속 똑같은 장소에만 있었을 테니까.“


그녀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내 말을 끊고 대답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 식당을 향해 걸었다. 마치 처음부터 혼자서 걸어온 사람처럼.


우리는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식은 훌륭했지만, 의자가 몹시 딱딱하고 불편했다. 나는 너무 불편해 자리에서 몇 번이고 자세를 바꿔가며 식사를 했지만, 그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계속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우리, 헤어지자.”


제주도에서 올라오고 난 얼마 뒤, 늘 함께 가던 카페에서 만난 그녀가 말했다. 여행을 다녀온 다음 그녀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나는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쩌면 내게 여행을 제안하던 날, 그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건 이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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