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안다. 그중에 많은 이들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또 많은 이들은 이 말을 믿는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반복작업을 하는 기계처럼 정직하게 노력만 할 수 있겠는가? 노력하다가 벽에 부딪힌 듯한 느낌도 받고, 이 길로는 노력해도 안 되는가 보다 생각도 들고, 노력이 정말 배신하지 않기는 하는 건지 의심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잘 걸어가다가도 주저앉기도 하고, 샛길로 새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그게 극단적으로 심해 앉은 채로 영영 일어나지 않거나, 샛길로부터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정도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 인간적인 일탈의 범주에 드는 행위라는 게 내 생각이다. 고백하자면 이는 소설 쓰다 말고 샛길로 새서 갑자기 이렇게 짧은 에세이를 쓰고 있는 나를 위한 변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를 위해서라면 그런 일탈은 피할수록 좋다. 그런데 글 나부랭이를 쓰는 사람으로서 궁색하게 말하자면, 글쓰기는 이렇게 일탈에 들어설 위험이 유독 큰 행위라는 생각도 든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글쓰기를 헬스클럽에 다니며 건강관리를 하는 행위(헬스)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헬스는 들이는 노력 대비 성과가 상당히 정직한 행위다. 러닝머신을 1시간 뛰면 그에 상응하는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고, 근육을 파괴시킬 정도의 근력운동을 하고 단백질을 보충하면 분명 더 크고 단단한 근육을 만들 수 있다. 살을 빼거나 근육을 키우는 것 자체가 쉽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먹고 노력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격증 시험은 어떨까. 시험에 대비해 기출문제나 예상문제를 풀다 보면 풀리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다. 여기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하는 과정은 지겨울 수 있지만, 어쨌든 노력하다 보면 풀 수 있는 문제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당연히 그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자격증 취득이 쉽다는 게 아니다. 자격등 취득을 위해 내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대강이라도 가늠할 수는 있다는 이야기다.
우쿨렐레 연주를 배운 적이 없는 나는 독학으로 연습을 하며 연주 실력을 쌓았다. 엄밀히 말하면 실력을 쌓기 위해 쌓은 게 아니라 취미로 하다 보니 실력이 쌓인 거지만, 어쨌든 그렇다. 처음에는 손이 아파서 어떤 코드는 잡는 것조차 버겁다. 하지만 연습을 거듭하면서 손가락에 반영구적인 굳은살이 생길 때쯤이면 코드를 잡는 게 점차 쉬워지는 게 느껴진다. 점차 더 어려운 코드를 잡을 수 있게 되고, 더 어려운 노래를 연주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아, 옛날에는 이 노래를 연주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데, 그래도 이제는 내 실력이 확실히 나아졌구나.
즉, 헬스는 거울을 보며, 혹은 인바디를 통한 체지방과 근육량의 변화를 보며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자격증을 준비하면서는 문제를 몇 문제 맞혔는지 숫자의 증가를 통해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우쿨렐레 연주는 수치로 알아채기는 어렵지만 한 달 전 버거웠던 노래를 지금은 더 쉽고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글쓰기는 어떨까. 이 역시 노력하면 당연히 성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걸 확인하는 게 어렵다. 오늘 쓴 단편소설이 반년 전 쓴 단편소설보다 잘 쓴 것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물론 합평 등을 통해 타인의 평가를 받아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로부터 이미 성과 확인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일치하는 것도 아니어서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확인 방법인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퇴고하면서도 퇴고하기 전이 나은지, 퇴고한 다음이 나은지 확신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극단적인 예시로 A라는 글은 10개의 공모전에 냈음에도 모두 탈락하고, B라는 글은 10개의 공모전에 제출해 중 두 군데에서는 최종심에, 한 군데에서는 당선되었다는 정도의 객관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한 도무지 성과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어딘가에 소설을 올려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기라도 하지 않는 한, 글을 쓰는 이들은 일탈에 빠지기 쉽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우려하여 보태자면, 글쓰기가 앞서 언급한 헬스나 자격증 취득, 우쿨렐레 연주보다 어렵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저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확신을 갖기가 조금이라도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피력하려는 것이다.
물론 내 주장이 사실이든, 궤변이든, 중요한 것은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그런데 성과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토대로, 글쓰기를 어두컴컴해 내부가 보이지 않는 커다란 통에 물을 채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면 답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때 우리는 물이 얼마나 채워졌는지 굳이 궁금해할 필요도, 확인할 필요도 없다. 단지 소설 한 줄, 시 한 단락만큼의 물방울이라도 보태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물통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만이 자명할 뿐이다. 그래서 글쓰기에는 특히나 왕도가 없다는 말을 하는 모양이다. 즉, 답은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한 줄이라도 더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성과를 확인하는 게 어려울 뿐 성과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