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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존재의 소멸을 추구해야 할까요?

(질의응답 / 초기불교 가르침의 관점에서 / 불교명상 고급정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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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일단 카르마는 연료가 아닙니다. 탐진치가 연료이죠. 카르마가 남아있더라도 연료인 탐진치가 사라지면 윤회가 끊어집니다.


그런데 매번의 생마다의 자아는 다를지라도 그 기저에 있는 의식이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생의 선한 혹은 악한 행위의 공덕에 의해 내생에 받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죠.

카르마도 여기에 매달려있는 것입니다.


아래 링크글의 경전 내용을 봅시다.

https://cafe.naver.com/growingsoul/40821


경계를 넘을랑 말랑? 하던 해탈한 고디까 존자의 식(의식)을 마라 빠삐만이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찾지 못합니다.

오온은 무상하지만 그 무상이라는 것이 한번의 생마다 리셋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색수상행 요소는 죽음으로 사라져도 식의 일관성은 이어지는 것으로 봅니다.

물론 그 식이 계속 같은 식은 아니라 생멸을 계속하는 깜박거림이라 하더라도 일관성 - 흐름이라고 보통 표현 - 이 있다는 것이죠.


이런 개념이 대승불교의 유식으로 넘어가서 아뢰야식으로 발전(?) 하게 됩니다.

아뢰야식은 저장하는 기능을 하는 의식이죠.

그래서 전생을 기억하거나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는 - 숙명통 - 겁니다.


--- '조건에 의해 생이 이어져서 괴로움을 계속 받게 되는 무언가는 '나' 라는 존재가 아니고' ---

가 아니고, 그게 '나' 맞습니다.

나라는 게 없다고 무아라고 했는데 그게 왜 나 가 맞냐고요?

우리가 스스로 관습적으로 자기 존재를 뜻하는 대상으로 지칭하는 그 '나' 는 존재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초기경전에서 부처님도 스스로를 가끔씩 '나' 라고 표현하십니다.

그것은 없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이죠.

그 있는 것이 마음을 내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하지 않습니까?

다만 부처님과 중생이 다른 점은 부처님은 필요할 때만 마음을 내고, 중생은 마음이 마음대로 안된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죠.


부처님 가르침의 삼법인 중 세번째 요소인 anatta는 무아 라기보다는 실체 없음 혹은 참나 아님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참나인 atta(atman)이 아예 없다 가 아니라 '오온은 atta가 아니다' 라고 하신 말씀이죠. 보통 나 너 우리 할 때의 나는 참나가 아닌 가아假我 로 지칭되는 나라고 보면 됩니다.


--- 왜 존재의 소멸을 추구해야 할까요?

가아假我로서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사를 넘어 끊임 없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힌두교에서는 현상을 환상이라고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현상을 환상이라 하지 않습니다.

무상이라고 하지만 무상은 생멸을 계속하는 변화를 뜻하는 것이고, 이 현상적 경험중 일부는 엄연한 실체이며 괴로움입니다 - 고성제.


답이 되었는지요?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원글 및 답변댓글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growingsoul/45048



- 明濟 전용석

한흐름 마음비움센터 I 한흐름 기명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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