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붓다의 가르침의 관점에서 본 카발라 수행의 한계

아래 내용은 모 회원님에게서 받은 메일 내용 중에

"카발라(서구쪽 오컬트 비전) 책을 읽었는데 빛으로 채우는 내용"

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회신한 부분입니다.

혹시 일부 회원님이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공유해봅니다. ^^



- 아래 -


근원은 빛의 속성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전부는 아니고 부분적으로)

빛의 속성을 잘 활용하면 탐진치를 녹이는 방편도 되니까

일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


또한 부처님이 주신 방편 중에 자비희사를 가득 채우면 해탈이라고 하셨으니

이 또한 부분적으로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해탈이라는 최종 목적이 없고

카발라의 최종 목적은 빛의 마스터로 영생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천상계의 단계 중에서 욕계, 색계, 무색계 중에 색계 천상의 존재들 또한

욕계 인간계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색수상행식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욕계 인간과의 차이점은 색온에 있어서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거나

빛으로 변신? 하거나 하는 둘 중 한가지를 번갈아가며 취할 수 있는 점이라고 합니다.

이런 특성을 연관시켜 보면 카발라의 궁극적 목적인 존재들은 색계 천상의 존재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들 수명 역시도 상당히 길어서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거의 무한해보인다고도 할 수 있지요.

물론 색계 천상도 워낙 차원이 다양해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수명이 늘어나지요.


하지만 무색계 존재들의 경우 색온조차 없이 수상행식 4온의 정신적인 요소들로만 이루어진 존재여서

빛이고 뭐고 없다고 하네요. ^^

수명 또한 상상할 수 없을만큼 길어서 하나의 존재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부처님도 뵙고

석가모니 부처님도 나중에 다시 친견하는 그런 이야기도 초기경에 나오기도 하지요.


중요한 것은 색계 존재든 무색계 존재든 그 무한해 보이는 (하지만 무한 아닌 유한) 수명조차 다하면 다시 윤회하여 욕계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연기법에 의해 태어남(환생, 윤회)을 멈추어 생의 과정에 뒤따르는 노병사 외 모든 괴로움을 소멸하고자 하는 가르침과 방편이 없이, 색계 천상 등의 빛으로 영생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카발라 수행이나 그 외 어떤 수행에도 그 한계가 분명한 것이죠.


카발라 이야기에 회신이 길어졌네요.

갈 길은 멀지만 바른 길 걸어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저 오늘도 한걸음, 화이팅입니다. ^^


- 명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비희사의 마음과 열반 해탈로의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