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면 괴로움의 소멸
본래 "무상" 은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무상은 "괴로움의 소멸" 로 이어지지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경전에서 반복되는 4선(색계 선정 4선정)의 정형구입니다.
결국에는 행복도 버려야 할 대상이지요.
바른 상태에 가까워지고 선정이 계발되면 (선정에는 강렬한 빛이 함께 합니다)
근본적인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초기경에서 보면 4선정(8선정 중 4번째 단계)이면 해탈의 조건을 만족했다고 보는 듯한 내용이 있는가 하면 - 아마도 여기서 혜해탈, 마른 해탈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합니다 - 삼매의 끝인 8선정(비상비비상처정) 완성 후 상수멸에 들어야 해탈의 조건을 만족했다 - 이를 양면해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해탈의 조건이죠 - 고 보기도 하지요.
어쨌든 우리같은 유학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까마득한 경지이고요.
선불교 닦는 스님들 또한 거리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만...
"세상에 대한 욕심도 싫어하는 마음도 버리고"
이 또한 초기경에 반복되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참 많이 버리라고 하죠? ^^
저는 중학생 나이 때 이 '해탈' 이라는 단어만 듣고서 결심을 했었는데요.
이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 깨달아서 해탈해야겠다!
지금 돌아보면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에 대견한 마음도 들지만, 그보다는 얼마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생각이었나, 어린 마음에 그저 호기로운 생각이었나 싶어서 웃음이 납니다.
비록 명상 수행에는 뜻을 두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얼마나 버릴 수 있겠습니까? 알면 알수록, 가면 갈수록 더 멀어 보이는 까마득한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하는 길임에는 틀림 없으니
그저 할 뿐.
오직 모를 뿐.
오늘도 한 걸음
진인사 대천명 하며 나아갈 뿐입니다.
우울함은 타고나는 기질이 아닙니다.
자라면서 환경적으로 덧씌워진 속성일 수는 있겠지요.
무언가를 기질로 받아들이면 뿌리 뽑기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타고 났으니까 안돼' 하는 식으로 핑계대기 딱 좋은 습성이지요.
그저 언젠가는 벗어버릴 수 있는 옷 정도로 생각하세요.
아직 벗지 못했을 뿐.
노력과 때가 되어 벗으면 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