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은 어떤 원리로 가능한 것일까요? (질문과 답변)


(질문)

예언은 어떤 원리로 가능한 것일까요?

예언의 원리는 조건따라 형성되는 것들의 조건을 예측하는 능력인가요?



(답변)

예언가들의 사례를 보면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점성술을 겸비해서 (점성술만은 아니고), 동양의 사례를 보면 주역을 겸비해서, 혹은 단순히 사물의 모양새/패턴을 보고 (격물치지라 함) 미래를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전혀 그런 도구 없이 그저 보이고, 천사가 나타나서 보여주는 등 다양한 모습인 것을 알 수 있지요.


예언의 원리보다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미래는 얼마나 유동적인가' 하는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과학적 이성적 사유에 물든 우리에게 미래는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다 라는 쪽의 편견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종종 아이를 낳을 때 어머니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태몽을 꾸고 그 태몽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의 상당 부분이 정해져있는 면이 있다는 뜻이죠.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 생애를 알고 그 내용을 보지만 싯달다 태자가 태어날 때 부처가 되거나 전륜성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받습니다. 이 두 길은 성공은 성공인데 성격이 완전히 다른 성공입니다. 결국 예언대로 되기는 되는데 부처쪽이지요.


본래의 질문 의도로 돌아가서 ^^

미래는 고정된 몇 가지 결과로 정해져 있다고 봅니다.

물리학이나 최근 영화에서 표현되는 다중 우주론처럼 무수히 많은 가지를 쳐서 거의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미래의 선택지는 아닌 듯합니다.

또 어떤 것들은 확정적으로 고정된 미래를 가지고 있죠.

예를 들면 (근원 에너지 책에서 썼던 것 같은데) 전화기나 휴대폰 스마트폰의 발명 등에 대해 중세 시대에 예언했듯이,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물건들이었겠지만 결국 발명될 수 밖에 없는 물품들이죠.

마찬가지로 세계대전 같은 일들도 결국 일어날 일들이었을 테고요.


'예언의 원리는 조건따라 형성되는 것들의 조건을 예측하는 능력인가'

질문하신 문장에는 예언이 이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깔려있는 듯한데 그것은 아니고요.

예언가들은 미래를 하나의 이미지로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전혀 못 배워서 문맹인 경우도 있었죠.

그저 이미 정해진 미래가 상으로 떠올라서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거의' 결정된 미래에 대해 기록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원리를 따지자면 그런 미래의 이미지가 우연히?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흥미로운 점은 더 많은 의식의 집합이 연관된 일일수록 - 인류 전체의 무의식 -

더 먼 미래의 일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더더욱 결정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변수들의 집합이기에 더욱 정교하게 짜여진 미래라는 거죠.


싯달다 태자가 붓다냐 전륜성왕이냐 하는 갈림길의 예언은 그분이 태어날 당시의 일이지만

훨씬 더 먼 과거불의 시대인 전생에 그분은 이미 미래에 붓다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지요.

싯달다 태자로 태어난 생에 붓다가 아닌 전륜성왕이 되었다고 해도 이후의 어느 생에선가는 반드시 붓다로 거듭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질문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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