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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제 전용석 Oct 13. 2024

삶의 목적은 어떻게 파이어로 이어지는가

기쁨의 삶을 향해 나아가기


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쩌면 먹고 사는데 바쁜데 언제 그런 것까지, 필수적이지 않은 부수적인 것까지 챙겨야 하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이런 저런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자랑스레 내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도 지나온 교육 과정 속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배운 적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들은 적도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근대의 교육 과정이 시작된 역사는 채 100년쯤 되었을까? 생각보다 많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현재와 같은 고도의 분업화된 직무체계나 노동 시스템 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을 아주 쉽게 떠올려볼 수 있다. 이런 근로 시스템은 증기기관이 발명 되고 상용화된 것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전까지 농업이 바탕이 되는 경제에서 주된 노동력은 가축의 힘과 인력에 있었고 근로 형태는 개개인의 농업으로 흩어져 있었다. 즉 이런 사회와 경제 상황에서는 지금과 같은 대중에 대한 집단적 교육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후 증기기관의 상용화 등 경제성의 증가로 직업적 바탕이 농업을 벗어나고 산업경제로 고도화되면서 대중적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자본가는 블루컬러 및 화이트컬러의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창출해야 했고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출생으로 인한 인구 증가와 맞물려 집단적 교육 시스템은 더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사회적 자본주의적 필요의 결과로 우리가 받아온 교육이 현재와 같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이런 교육이 대중을 자본주의의 노예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이 직접적인 목적이든 간접적인 목적이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손자병법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적을 알고 자기자신을 알아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돌아보자. 세상은 나의 친구인가? 

나의 사람 친구나 사랑하는 가족들 말고 우리가 세상이라 부르는 그 자체를 돌아보자는 말이다.

친구인가? 

세상은 당신을 너무나 다정하게 감싸고 항상 잘 되도록 우주의 기운이 돕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부모의 부와 권력으로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주지 않는 이상 세상은 우리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글에서 나는 바로 자기자신의 ‘삶의 목적’을 이야기하려는 중이다.

그것은 누구에 관한 것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 글을 읽는 당신 자신에 관해서다.


세상(자본주의 경제)을 적이라고 잠깐 동안만 가정해보자. 특히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지금까지 믿어왔던 교육 시스템만이 아니라 세상을 -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 -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세상을 알고 자신을 (여기서는 자신의 삶의 목적) 알아야 위태롭지 않게 될 것이다.

* 이 글의 관점은 절대로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자본주의 경제를 잘 알고 이용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일단의 관점은 그렇다치고 나는 자본주의를 비롯한 경제의 전문가는 아니기에 이 글에서는 나를 알기 위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는 것에 관한 내용으로 풀어가려 한다. 


많은 이들이 혼동하지만 목적과 목표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목적은 특정한 방향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어느날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목표는 특정한 지점을 가리킨다. 목표는 완료된 상태를 확실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하며 미래의 시점이 특정되어야 한다.


목적은 당신의 평생을 다 바쳐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목표는 언젠가는 반드시 끝맺음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경영학자라고 하자. 당신은 경영학의 발전을 돕는다는 삶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당신이 죽고 나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학자로서 논문 100편을 써내겠다고 하면 그것은 언젠가 달성되어야 할 목표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쯤이면 목적과 목표에 대한 기본적인 차이를 이해했을 것이라 믿는다.


결국 목적은 목표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목적이 없다면 세워지는 모든 목표들은 방향성을 잃고 헤매게 된다. 거시적인 목적이 없는 단편적인 목표들의 조합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영어 실력을 키우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고 치자. 영어 실력이 늘면 당장의 업무에 도움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고 거시적인 목적이 없다면 그와 같은 노력의 동기는 금세 힘을 잃고야 말 것이다.


동기는 모든 의도적인 행위에 대해 열정과 에너지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일들을 특정한 동기가 있어야만 해낼 수 있다. 당신이 돈을 버는 동기가 무엇인지 자신을 돌아보라. 어떤 이들은 꿈을 이루는데 바탕이 되는 것이 돈이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한 노력을 한다. 어떤 이들은 돈을 벌지 않으면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기에 돈을 벌기 위한 소극적인 노력을 한다. 물론 많은 이들의 동기는 적극과 소극 사이의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오히려 소극에 가까우리라 예상되지만.


진정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 이라는 분야에서 쓰이는 표현중에 ‘(삶의) 목적은 모든 동기에 우선한다’ 라는 것이 있다. 즉 그 어떤 동기부여 보다도 삶의 목적이 당신에게 가장 큰 힘과 에너지를 준다는 뜻이다. 올바른 삶의 목적을 세우고 그것과 하나된다면 당신의 삶은 활기가 넘치게 될 것이다. 다 죽어가는 듯이 축 늘어진 기운 없는 인생 따위는 뻥 차서 날려버리고 10년은 젊어진 듯이 살아있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질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이런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그것은 바로 삶의 기쁨을 되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당신의 눈이 반짝이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당신의 가슴이 뛰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의 삶에서는 그런 것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면 과거에서 힌트를 찾아보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가능한 모든 기억들을 샅샅이 떠올려서 노트에 적어보자. 묘사하듯이 상세히 적지 않아도 된다. 그 기억을 떠올릴만한 열쇠가 되는 키워드 정도를 적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적으면 적을수록 끌어올리는 그물에 딸려오는 물고기처럼 새록새록 잊혀진 듯했던 기억들이 딸려올 것이다. 슬픈 일, 화나는 일, 가슴 설렜던 일, 기쁜 일... 그 모든 크고 작은 경험들이 모두 자신의 자산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과거의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이 생에서 쌓여진 이 삶의 기억 이외에 기억하지도 못하는 까마득히 먼 기억들까지도 모두 지우면, 그래서 남아있는 모든 경향성의 기억들마저도 다 지우고 나면 나는 누구일까? 그래도 그런 나를 무엇이라고 누구라고 규정하거나 고집하거나 집착할 수 있을까?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기억이라는 블럭들의 조합이다. 까마득히 먼 과거로부터 이 생의 기억하지도 못하는 기억(5세 이전)의 블럭들까지의 조합으로 형성된 경향성을 가진 독특한 개성의 누군가이다. 


이 블럭들 속에 결정적인 힌트가 있다. 

우리가 흔히 음악의 천재라고 하는 모짜르트에게는 어떤 블럭들이 있었을까? 아마도 까마득히 먼 과거로부터 가져온 음악과 연관된 블럭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짜르트의 교육열이 만든 블럭도 큰 조합으로 합쳐졌음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 

과거의 블럭들을 열심히 반복해서 찾아보았는데도 (힌트는 어느 블럭엔가 숨겨져있을 수도 있다) 답을 찾기 힘들었다면 현재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삶의 목적을 찾는 힌트는 ‘기쁨’ 이지 의무도 아니고 욕망도 쾌락도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힘든 것이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기쁨을 위한 목적이 바탕이 되어서 돈이라는 수단이 뒤따르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서른 살쯤의 언젠가 과거의 블록들을 뒤져서 힌트를 찾았다. 그중 하나는 과거의 내가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염세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다가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 경험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런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하고 힘든 누군가를 위해 노력했을 때 도움이 되어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느낀 기쁨은 이루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환희로운 것이었다.


이런 결정적인 경험들이 내 삶의 목적으로 구체화되었다.

삶의 목적과 연관된 강의를 할 때 사람들에게 강조한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만드세요. 그리고 누군가가 당신을 자다가 깨워서 당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즉시 대답할 수 있도록 하세요.


내 삶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람들의 영적인 발전을 돕는다”


삶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나를 기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기쁨들 중에서 가장 가치 있고 높은 수준의 목적이야말로 내 삶의 목적의 핵심이다. 모든 동기들이 핵심 목적의 아래에 무릎을 꿇는다. 


다시 한 번 음악계의 최고 신동인 모짜르트의 삶을 떠올려보자.

모짜르트가 음악을 통해 타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삶의 목적을 가졌을까? 아마도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모짜르트는 자신의 음악에서 크나큰 기쁨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결국 그의 음악은 후세까지 남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누구나 남을 돕는 일을 목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출발점은 자신의 기쁨이다. 단 자기만의 욕망이나 쾌락이 아닌 순수한 기쁨이 목적이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빵을 만드는 기쁨을, 기계를 고치는 기쁨을, 그림을 그리는 기쁨을...... 느낀다. 그 기쁨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기쁨과 행복이 자신의 직업이 되고 타인에게 기쁨을 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기쁨의 길로 나아가다 보면 말이다.



- 명제 전용석

- 한흐름 마음비움센터 (http://cafe.naver.com/growing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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