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러더스 Jun 13. 2022

캐나다와 미국의 거리

 

기서는 당연한 상식이지만, 한국에서만 나고 자란 나는 가끔씩 이 두 나라 간의 거리에 놀란다. 한창 트럼프가 남미 국경 쪽에 장벽을 쌓자고 한 탓에 북미와 남미가 얼마나 가까운진 알면서도 정작 워홀 온 이곳과 미국의 관계는 평범한 이웃나라로만 여겼다. 하기사 선택과목으로 세계지리를 배우지 않는 이상 특히나 세계사엔 덜 등장하는 캐나다니 그랬을 수밖에(라고 변명을 해본다.)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을 보며 ‘아, 저거 록키산맥인 줄 알았어요’라고 한 날, 얘가 이렇게 멍청했나 동공지진하는 지인분을 보고 이제는 두 나라 사이를 주의 깊게 알아볼 때가 왔다고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도 저기가 어딜까 모르겠단 말이지


위와 아래

EST라고 들어보셨는가. 워싱턴과 뉴욕, 오타와와 토론토 같은 대도시가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부 표준시인 Eastern time zone을 잘 따져봐야 하는 서쪽의 우리. 같은 나라에도 세 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렇다. 밴쿠버에서 토론토까지 비행기로 4시간 반, LA에서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 비행기에서 내리면 시계를 조정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 시애틀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배로 두 시간. 밴쿠버에 있다는, 비자 없이 미국인과 캐나다인이 만날 수 있는 피스 아치 국제공원까지. 같은 나라지만 동과 서의 거리보단 다른 나라인 위와 아래의 거리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캐나다 워홀을 하면 꼭 근처 미국 도시를 찍고 오라는 말이 있을 정도.


매일 시애틀에서 들어오는 코호 페리


심지어는 미국 어느 지역에서 왔다고 하면 여기 사람들도 그 지방의 악센트나 문화를 대충 알기 때문에 계산대에 있을 때마다 종종 소외감을 느낀다... 오죽하면 자유시간에 역사책을 읽겠는가. 한 번은 텍사스에 살다 맨해튼에 직장을 구한 양반이 시애틀 편 배를 타고 들어와 동료와 총기 관련으로 내내 농담을 하는데, 끼어들 틈이 없어서 서러웠다고 한다.



달러 받아요?

이곳으로 들어오는 크루즈는 대충 루트가 같다. 시애틀 출발-알래스카-빅토리아. 알래스카야 그쪽 나라니 그러려니 해도 여기서 대뜸 달러부터 내는 미국인들. 놀랍게도 쌍수 들고 환영이다. 언젠가 한 번 카드 쓰는 걸 권장한다고 했더니 곁에서 티셔츠를 접던 사장님이 넌지시 하는 귓속말. "헤이, K, we love US dollars." 카드는 수수료가 든단다.


솔직히 다른 나라로 넘어와 자기 나라 돈을 내는 이런 경우가 적응 안 되지만 그만큼 두 나라가 가깝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보다 약하다는 반증이기도...(거 미안합니다) 특히 우리 가게의 환율은 1 미국 달러=1.2 캐나다 달러라 1.28 캐나다 달러인 현 시세로는 달러를 받는 게 사장님 입장에선 꽁돈이 생기는 격! 자칭 긍정적이라는 한 동료는 가게를 닫을 때면 수북한 달러를 보며 사장님은 또 부자가 되겠네~하며 신나 한다.


캐나다 돈을 기념품으로 가지겠다는 미국 관광객들에게 맨날 하는 말. "가장 작은 지폐는 5달러야."


+모노폴리 머니라뇨

그래도 가끔 여행객들의 직설적인 면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 아이 동반 여행객의 경우, 캐나다 지폐를 가지고 싶은데 일대일 교환을 해달라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미국 달러가 더 세다고 말했는데 왜 일대일 교환을 요구하는가 싶지만...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동료들. "응, 우리 돈 부루마블 돈 같아!"(원어는 monopoly지만 제가 의역했습니다^^) 가끔씩은 받은 잔돈을 보며 ‘기념품이네요~’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개개인이 발언에 조심하는 캐나다에서 이런 농담은 먹히는 건가?! 싶은 의아한 광경. 물론 재밌으니 나는 같이 웃을 뿐. 



그놈의 파운드

여기서 살다 보면 은근히 자기들만의 단위를 고집하는 몇몇 영미권 국가 같은 면모를 발견하곤 한다. 특히 파운드. 이전, 어쩌다 알게 된 미국인과 놀러 갔을 때 다음 날 날씨를 화씨℉로 얘기하던 것을 보고 '이게 바로 외국인...?!' 하며 놀랐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선 당연히 일기예보가 ℃로 제공되길래 안심해서일까. 분명히 물품에 쓰는 단위는 g인데 장만 보면 야채와 과일은 lb(파운드)더라. 심지어는 km와 mile, cm와 ft(피트)를 동시에 쓰는 이 사람들. 심지어 일상회화는 거의 미국식 단위를 쓴다. 하나만 하지... 


이게 다가 아니다. 단위를 섞어 쓰는 것도 음? 싶은데 철자도 섞어 쓴다. Centre, colour, favourite와 Mom, analyze, gray. ESL출신 동료가 이곳에선 colour로 쓴다고 했을 때, 굉장히 사소한 상식인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전혀 뜬금없는 곳에서 느낀 문화충격이라고 할까. 하기사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어쩌겠어. 그리고 사실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영역이 아니다. 영어를 모국어나 공동 언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은 다 어느 정도씩 섞인 면이 있을 테고.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은 한다. IELTS 시험 보기 전에 이런 건 알아뒀어야 했는데!



너희에게 미국인들은?     


“음... 요즘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요 몇 년 사이에 조금 사이가 안 좋아졌어.”

-대학생 J

“걔네는 진짜 웃겨! 걔네는 다 하고 싶어 해!”

-동료 D

“우리의 원자재를 외국 회사가 소유하는 건 큰 문제지.”

-G 할머니


사실 물어볼 만한 주제는 아니다만 브런치를 위해 외국인으로서의 특권을 종종 사용하는 나. 그날 밤, 나의 질문은 ‘미국인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평균 인식은 어때?’였다. 처음엔 신입 J양, 나중엔 친한 D양. 후에 D양은 내가 J양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는 걸 알고 폭소를 금치 못했다. "세상에, 너 정말 아무거나 물어보는구나!" 


D양은 헝가리계 캐나다인으로, 특유의 농담 실력이 특히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모순과 만날 때마다 빛을 발한다. 그녀의 입장에선 매일매일 political하게 구는 캐나다인만 보다가 가게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와 온갖 해프닝과 별별 질문(ex.당신네들 의료보험에선 의사를 굉장히 길게 기다려야 한다면서요?, 켄터키 프라이드 어디서 팔아요?, 내 친구 앨버시 딸 어디 사는지 알아요? 등)을 남기는 미국 관광객들이 훨씬 즐거울 노릇. 말이야 가시가 돋쳤지만 사실 D는 누구보다 크루즈가 들어오는 밤을 신나 한다. -게다가 한 마디 더. "아, 걔네는 다 뚱뚱해! 이게 다 차만 타고 다녀서 그래!" 익명으로나 말할 의견까지 가감 없이 전해주는 D가 친구라 다행이다.


J양은 대학생 캐내디언답게 누구보다 민감한 화제는 에둘러 표현한다. 즉, 찬반을 확실하게 정하면 안 되는 문화적 면에서 특히 그렇다고 할까. 그래서 오히려 미국인들에 호의적이지 않아 많이 놀랐다. 최근 몇 년이라... 왠지 너무 당연하게 미국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워낙 캐나다 전반적인 입장과 정치색이 다르고, 트럼프 당선에 충격받은 미국 내 마이너리티가 실제로 이민을 종종 왔기 때문에 미국인에 대한 이들의 이미지가 나빠졌을 터. 특히 총기, 의료보험, 미국 사기업에 대한 인식 등에서 두 국민은 주로 설전을 벌인다.


이 가격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겠는 분들을 위해. 풍문으로 들은 이전의 앞 두 자리는 16-18이었다.


G씨의 말은 캐나다 국민들이 자주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 러시아 제재로 원유 값이 폭등한 지금 세계 4대 원유 생산국 중 하나인 캐나다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기름 가격이 화제에 오르면 등장하는 나라, 미국. 특히 많은 캐나다의 원유는 미국으로 수출된 후 정제를 거쳐 다시 수입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 당연히 불만을 느낄 만하다. 조금 오래된 통계긴 하지만 15년 기준 97%의 원유를 미국에 수출했었다 하니 그야말로 놀랄 만한 수치(출처: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 게다가 캐나다 정부에서 그렇게 공을 들였던 키스톤XL프로젝트는(간단히 말하면 앨버타와 텍사스 사이에 송유관을 놓는 사업이다) 환경단체와 원주민 단체의 반발로 최근 무산되었기도. 사실 이번 사태의 경우는 향후 원유 비축을 위해 정유기업들이 원유를 사들이며 평균적으로 가격이 오른 데 주원인이 있지만 여태껏 겪은 게 있으니 G씨처럼 아랫동네를 곱게 볼 수는 없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시각. 곧 자원경쟁이 본격화될 텐데 이들의 앙금이 과연 어떤 행로를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왜 나는

보고 들은 것도 많은데 두 나라의 거리감이 왜 가끔씩은 유달리 새롭게 느껴지는 걸까. 아마도 한중일 삼국과는 다른 양상이라 그런가 보다. 분명히 공유한 역사도 깊고 교류도 잦으면서, 심지어는 여기서 한국에 관해 종종 말할 때도 자주 튀어나오는 중국과 일본이지만 통화가 융통되거나 면전에서 자기 비하 개그를 하는 건 말도 안되고(높이면 높였지) 무엇보다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역사 영역도 존재한다. 남북이 분단된 이후, 반도라지만 실질적으론 섬처럼 기능하는 우리의 교통수단도 한몫하는 이 기묘한 삼각관계(우습게도 한국어-중국어-일본어 모두 이 단어의 발음이 비슷하지만). 세 나라 사이에 바다가 끼었다는 사실이 물리적 거리감을 한층 더 두껍게 만드나 보다.


언젠가 세계사 선생님이 너희는 동아시아가 EU 수준의 결합을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은 적이 있다. 반의 모든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회의감은 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분명 경제적 수준으로는 세계를 호령할 연합이 되겠지만 어쩌면 세계평화가 더 빠를 이 상황. 막연한 미래에 희망을 걸며 비행기로 열 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곳에서 느낀 한 단상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에서 몸소 체감하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