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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Nov 21. 2023

마지막은 키스로, 이만하면 되었다.

나에게 허락된 감정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내 시선의 끝에는 오빠가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자꾸 근처를 맴돌았다.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작고 귀여운 동생을 달고 다녔다. 동생은 내 감정에 제일 공감을 잘하고 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최고의 조력자였다. 그리고 오빠 옆에도 항상 까불거리는 친구가 함께였기에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넷이 어울리게 되었다. 어떤 날은 넷이서 도서관 대신 영화관을 가기도 했고 더운 여름에는 캐러비안베이에서 신나게 파도 풀장을 즐기기도 했다.

하루는 도서관 사서가 대놓고 물어봤다. “그렇게 좋아?” 이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다들 아는 감정이니 감출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마음에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하는 내 대답을 오빠가 못 들었을 리는 없다.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얗다 못해 맑은 오빠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그 심장이 터질 거 같은 이 감정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독자 마냥 자꾸 오빠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어느새 내 동생과 오빠의 친구는 커플이 되어 자연스럽게 오빠와 둘이 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역시 최고의 조력자다운 자세다. 근데 여기서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 도대체 이 남자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먼저 고백해야겠다.


“일어나 7시야. 오늘 일찍 깨우라며~”

아씨... 아침에 TV를 보고 싶다고 꼭 일찍 깨우라는 아들의 말을 다른 때와는 달리 새겨들은 신랑의 다정한 목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꿈틀거리던 아들을 먼저 내보내고 눈을 감고 최면을 걸었다. 나에겐 아직 30분의 시간이 더 있다. ‘다시 잠이 든다. 다시 잠이 든다. 다시 잠이 든다. 잠이 안 온다! 망했다.’

그렇다고 내 아까운 30분을 현실적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만약 꿈이 계속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을 해본다. 난 오빠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특별히 화장에 정성을 들인다. 마스카라도 한 올 한 올 바르고 촉촉한 입술을 완성시킨 후 내가 좋아하는 IN LOVE AGAIN 향수로 마무리를 한다. 옷은 내가 좋아하는 블루톤의 셔츠를 입고 단추 2개를 풀어준다. 아직 3개는 오버다.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를 신은 후 아이보리 색의 숏재킷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서니 머리는 푸는 것이 좋겠다. 포니테일이 어울리지만 남자들은 긴 생머리 여자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는 뭇 사내들의 이야기에 힘을 얻는다.

“오빠, 나 오빠 좋아해요.”

아 드디어 말했다. 말하고 나니 속은 후련하지만 심장은 터져서 내 몸이 벚꽃잎처럼 흩날려 버릴 거 같다. 아니 오빠의 침묵과 함께 먼지가 돼서 아예 사라져 버리고 싶은 찰나 오빠가 대답한다.

KISS로.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충분히 설레고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꿈이었다면 어떻게 끝났을지 모르니 오히려 바람직한 결말이다. 꿈에서 못다 꾼 꿈은 이루었고 충분히 설레었다. 불륜 실제 상황도 아니고 이 정도는 기혼자라면 한 번씩은 꾸어 봄직한 꿈 아닐까?


사람이 나이가 들고 아니 늙어가고 세포도 늙어가면서 연애세포라는 것도 늙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세포에게서 기인한 게 아니기에 이건 그냥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내가 결혼을 하면서 제일 걱정을 했던 부분도 이 '감정'이었다. 나는 감정에 굉장히 충실하고 그 감정마저도 좋아하며 나와 감정의 시너지를 키워가는 사람이다. 그 감정이 주는 아드레날린과 에너지를 잘 알기 때문에 그 감정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에 결혼하고 3년 차에 접어든 반듯한 친구의 '연애 그 심장 떨리는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말은 다소 충격이었다. 도대체 감정이 뭐길래 이렇게  나의 결혼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냐.

감정, 특히 그 연애감정과 함께 따라오는 치졸한 질투심 마저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드라마와 영화 소재에서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것이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다. 어떤 만남인지 보다는 어떤 감정인지를 더 섬세하게 그려낸다. 작품에서 배우의 외모보다 얼마나 감정선을 잘 표현했는지로 흥행이 판가름 나고 감정선을 잘 표현한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배우가 연기해도 내 감정이 건드려지지 않으면 동하지 않는다.

최근 본 심정 떨리면서 여운이 많이 남은 영화는 남과 여라는 영화였다. 공유와 전도연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핀란드 눈 속에서 눈이 맞았지만 결국 가정으로 돌아간 남자와 가정을 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흔한 소재 불륜이기에 둘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상황도 관계를 이어가는 우연도 영화답게 드라마틱하지만 실제로 억지 가득한 스토리다. 잘생긴 공유가 나오는 영화라 시작했지만 영화 내내 강렬했던 건 전도연의 눈빛이다. 매 순간 바뀌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전도연의 눈빛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도, 언젠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도 전도연의 감정 담긴 눈빛이다. 그렇게 꿈과는 또 다른 감정에 몰입했다.

오늘은 꿈에서 허락된 감정 덕분에 그리고 내 상상 속의 KISS 덕분에 설렐 예정이다.

사진 출처 : 영화 '남과 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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