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있던 2013년 10월은 다른 의미로 긴장을 놓치지 못한 한 달이었다. 내가 응원하는 두산이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내리 지다가 2번의 연장 접전 끝에 최종 3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잠실벌을 공유하는 LG를 상대로 4전 3승을 하며 결국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해였다. 내가 바라는 남편상중에 하나가 같은 야구팀일 정도로 중요했다. 지금은 현생에 치여 야구가 9명이 하는지 11명이 하는지도 잊어버렸지만 그 당시에 나에게 가을 is야구일만큼 애정하는 취미였다.
치열 1. 신부대기실에 날아든 비수
기다리던 결혼식 날, 오늘의 주인공이어서 설레는 이상으로 들뜬 이유는 전날과 전전날 치러진 한국시리즈의 1, 2차전의 승리 때문이다. 결혼식 전날에도 야구 중계를 보고 하이라이트를 모두 챙겨보느라 늦게 잠든 것도 사실이었다. 결혼날 아침 눈뜨고 오늘이 3차전이 아님에 무한감사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신나서 도착한 예식장의 신부대기실은 말 그대로 시끌벅적 축제의 한복판이었다. 결혼이 늦은 만큼 인맥도 많았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지인들의 연륜은 어린 아가씨의 수줍음보다는 거침없는 30대 중반의 수더분함이 주를 이뤘다. 게다가, 과년한 정씨네 큰딸이 드디어 시집을 가니 일가친척들도 기쁨을 감추지 않고 축하하는 곳이 바로 여기, 신부대기실이었다.
그렇게 축하와 안부가 오고 가는 아름다운 자리에 비수가 날아들었다. "신부 웃음소리가 문을 타고 넘네" 이건 무슨 고리짝에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란 말이냐. 억양, 말투, 목소리의 완벽한 조화는 분명 웃으라는 칭찬이 아니었다. 입꼬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어 마주한 분은 내 지인이 아니었지만 지인이다. 오늘부터 우리 1일. 그래도 난 이곳의 주인공, 신부님이니 예의상 예쁘게 인사하고 나가시자마자 더 크게 웃었다. 모르시나 본데, 내 친구가 결혼식날 그렇게 울어 하객들이 사연 있냐고 하더이다. 제가 사연 있는 여자로 보이면 안 되지 않을까요?
치열 2. 폐백 그... 할많하않
결혼식이 진행된 곳은 그 당시에 제법 큰 성당으로 하객이 적을 경우 부담스러워하는 곳이었다. 양가 부모님이 친척이 많은 분들이 아님에도 가득 채웠으니 부모님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곱디고운 한복으로 갈아입은 후 식당으로 인사를 갔다. 1시간 혼배성사를 한 후라 썰렁할 줄 알았는데 빈 테이블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쁜 손을 하고 양가 부모님들 뒤를 따라다니며 공손히 인사를 다녔다. 어릴 적부터 뵀던 아빠 지인들께 인사를 드리고, 엄마 친구들께 감사를 드리는데 자꾸 이모님이 눈치를 주신다. 이유인즉슨, 폐백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께 가야 함이었다. 아직 인사를 못 드린 지인들이 많은데, 특히나 내 친구들은 시작도 못했는데, 친척이 몇 분 안 되니 다녀와서 하라는 말에 순진하게 따라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돌아온 식당에는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그 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별로 생각도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나는 건, '사촌', '기차 시간', '차가 막혀', '잠시만 기다려보고' 뭐 이 정도? 무튼 그 자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신부님은 지연되는 폐백실에서 연지곤지 찍고 어색하게 웃다 엄마가 준비해 주신 폐백상을 가운데 두고 다소곳이 절을 했을 뿐이다. 챙겨주시는 시부모님과 아가씨가 계셔서 다행이었다 정도로 마무리해볼까 한다. 결혼도 폐백도 처음이라 몰라서 물어보는데, 지각하는 신랑 사촌까지 기다려가며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가요?
치열 3. 딸이 뭐라고!
폐백이 끝나고 확인한 핸드폰의 인사 못하고 간다는 수두룩한 메시지에 이성이 한가닥 끊어졌다. 딸의 폐백이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하려고 기다리시는 부모님을 보고 두 번째 가닥도 끊어졌다. 아, 아빠 당뇨라 잘 챙겨드셔야 하는데. 엄마, 아빠, 동생들과 편하게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서운했다. 남은 이성을 손가락 두 개로 겨우 부여잡고 먹는 둥 마는 둥 힘들다는 핑계로 웃지도 않은 채 밥상자리를 지켰다. 결혼식 끝낸 신부님이 힘든 거는 당연지사 아닌가. 시부모님이 던져주신 대추와 밤 주머니를 고이 받아 마지막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공항으로 가는 자동차 안은 핑크 하트 뿅뿅 꾸며진 겉과는 달리 싸늘함을 넘어 냉기가 감돌았다. 핸드폰을 꺼내 귀한 시간 내준 지인들에게 감사를, 기다렸다 발길을 돌린 지인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는데 이성을 잡고 있던 손가락 힘이 점점 약해진다. 폐백봉투를 확인하는 순간 남아있던 이성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돈의 적고 많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니 중요했다. 우리 부모님의 봉투가 제일 두꺼웠고 그게 너무 속상했다. 딸을 가진 부와 모는 모두가 웃는 폐백실에서 미소 지으며 도착하지 않은 사돈댁 조카를 기다리시다 처음 인사를 받으시고 건네신 봉투였다. 분명 폐백실의 분위기와 주인공은 나와 우리 부모님은 아니었고 그 기다림은 분 단위였어도 우리에겐 충분히 편치 않은 긴 시간이었다. 딸 기죽지 말라고 두툼하게 넣어주신 봉투가 고맙기보다는 원망스럽고 죄송했다.
목구멍에 손가락 집어넣어 남김없이 오바이트하듯이 불만을 토해냈다. 그렇게 해야지만 엄마, 아빠의 딸노릇을 하는 거 같았다. 엄마, 아빠한테 내 미안함이 닿을 거 같았다. 엄마, 아빠의 위로가 되는 거 같았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쏟아부었다. 지인은 신혼여행 가는 차에서 신랑에게 밤과 대추를 집어던졌다던데 저도 그럴걸 그랬나요?
치열 4. 옆자리의 타인
공항에 도착해 둘만 남았고 힘들었던 신랑도 지지 않는 싸움이 시작됐다. 결혼하자마자 싸움이라니, 벌써 지친다. 그래도 도리는 해야지 싶어 양가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드리고 내 비행기 티켓만 들고 돌아섰다. 그렇게 화가 나서 가는 나를 신랑도 잡지 않았다. 혼자 라운지에 들어가서 진정을 시키려 해도 방법이 없다.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난다. 동생들한테 전화도 못하겠고 엄마, 아빠는 보고 싶다. 이러려고 결혼한 건 아니었다. 탑승 시간이 다가오는데 연락은 안 온다. 더럽고 치사해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신혼여행을 포기할 용기도 없다.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비행기에서 만난 타인처럼 옆자리에 앉아 먼 길을 떠났다. 오늘이 한국시리즈 3차전이었다면 안 싸웠으려나?
이열. 즐겁고 기쁜 날이었다
옆자리 타인이었으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고개를 떨어뜨리고 자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그렇다고 베개를 넣어줄 요량은 없다. 그렇게 잠든 신랑을 보며 탑승은 타인처럼 했지만 내릴 때는 정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허니문을 축하합니다" 자고 일어나니 승무원이 케이크와 축하를 전했다. 그래 우리 허니문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