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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Mar 14. 2024

노후에 신랑덕보고 살기 위해 한 일

우리를 위한 장기 플랜

오래간만에 아이가 아빠와 함께 자기 위해 일찌감치 방에 들어갔다. 방에서 신랑과 아이가 잠에 빠져드는 동안 거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어느 순간부터 내 손에서 핸드폰 대신 책이 들려져 있고, 게임을 하던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어느 때보다 즐겁게 몰입하며 사는 요즘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던 소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 보니 가장 빛나고 순수했던 그 시절처럼 책을 읽는다. 책장을 넘기고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이왕이면 더 밝게 빛나기를 꿈꾸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쓰는 것보다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부터 책을 읽는 즐거움을 되찾은 건 아니었다. 너무 오랜만에 책을 읽어야 해서 뭐부터 읽어야 할지 감도 못 잡았다. 읽고 싶어서 읽는다면 어려움이 없겠지만, 해야 해서 하기 시작한 책 읽기라 강제성이 필요했다.

우선 독서모임 3군데에 참여하며 책 선정의 수고로움이 줄어들었다.
읽은 책과 연관해서 글을 쓰다 보니 쓰고 싶은 주제를 위해서라도 읽어야 한다.
인스타그램 서평단으로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띄면 참여하고 간간히 서평을 쓰기 위해 읽는다.
무엇보다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추천해 주는 책들이 너무 욕심난다.
그러다 보니 읽게 되고 읽다 보니 즐겁다.



신랑이 아이를 재우고 나온다. 고개를 들고 수고했다는 말은 건네지만 눈은 책에 가 있다. 오랜만에 아이가 일찍 잠들어서 맥주 한잔 하며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인데, 계속 책을 붙잡고 있으니 내심 서운함을 내비친다. 모르면 몰랐지 알아챘으니 책을 뒤집고 냉장고의 맥주를 꺼내 들고 마주 앉았다. 아이의 일상생활로 시작한 이야기는 요즘 읽는 책으로 넘어왔다. 손웅정 작가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읽는 중이고 신랑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책이었다.


"책 재밌어?"

"응, 다 읽고 자기도 읽어봐."

"여유가 있어야 말이지."

"기차에서 읽으면 되지. 자기 책 보는 거 좋아했잖아."

"힘들어."


매일 글쓰기를 하고 많은 걸 느꼈는데 그중 하나가 쓰려면 읽어야 한다는 거다. 신랑의 꿈이 떠올랐다. 작가. 그래서 요즘 읽고 쓰는 나를 많이 부러워하고 외벌이 가장의 무게를 버티며 현생을 힘들어하는 것도 안다. 그 꿈! 내가 이뤄줘야겠다. 마침 매일 글쓰기를 진행하는 출판사에서 내일의 작가 수업을 모집 중이었다. 8주간 줌수업과 1대 1 코칭을 통해서 책출판의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고 함께하는 프로그램이었고 내가 해볼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자기야 지금 내가 보낸 링크 한번 봐봐."

"자기 하게?"

"아니, 난 아직 부족해. 자기 하라고."

"글쎄... 시간이 없어서..."

"시간 돼! 금요일 밤 줌수업이고 당분간 내가 아이 케어할 테니까 집에 오면 자기 시간 가져."

"될까..."


또 알아채고 말았다. 하고 싶구나. 다음날 출판사장님한테 연락해 신랑 등록을 결정하고 멋지게 결제까지 마친 후 전화를 걸어 예쁘게 말했다.

"자기야, 생일 선물이야~"




언젠가 우리의 아이가 성인이 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더 이상 우리의 아들로만 존재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신랑이 내 옆에서 나보다 더 치열하게 글과 싸우고 책에 덤벼들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중반 이후의 삶에 누군가를 껴줘야 한다면 그건 책과 글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왕이면 대성해서 퇴고 외에는 머리 쥐어뜯을 고민거리 없이 크루즈에서 읽고 쓰고 먹고 놀고 춤추며 신랑덕보며 살고 싶다.

그때가 돼서 2024년을 후회하며 '괜히 나 편하게 책 읽고 글 쓰자고 신랑한테 권했나' 자책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신랑이 글쓰기를 시작한 요즘 마음 편안히 책을 읽으며 글을 쓰니 참 좋다.

집중력에 좋은 피라미드 쓰고 글을 쓰는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흥민이의 은퇴가 우리 부부에게도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는 시기가 될 것이고, 다음 챕터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나와 아내는 더욱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꾸릴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부모로서 자식이 꾸는 꿈을 돕는 것도 행복이고,
그 도움의 시기가 끝났을 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만드는 것도 행복이라고.

- 손웅정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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