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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Dec 14. 2023

노란 머리 엄마의 사연

한때는 클레오파트라였습니다.

금발의 파란 눈이면 좋겠지만 순도 100퍼센트의 황인종 우성인자를 가지신 부, 모를 그대로 물려받아 나 역시 흑발의 갈색눈으로 태어났다. 이왕 황인종의 형질을 띌 거면 백설공주의 상징인 흑발의 까만 눈동자였으면 좋았겠지만 자연광에서는 살짝 갈색을 띠는 짙은 갈색머리와 같은 색의 눈동자의 서양인이 보면 구분 안 가는 딱 아시안이다. 그래도 엄마를 닮은 직모에 아빠를 닮은 얇은 머리카락덕에 따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찰랑거리는, 머리에 돈 안 들이는 삶을 영유했다. 26살 그 또라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머릿결에 나름 프라이드 가지며 그렇게 살았다.

입사 후 얼마 안 돼서 발표된 흡수합병 소식에 다들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고 신입이던 나에게 새로운 업무를 알려주거나 맡길 만한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그저 정시 출근과 눈치껏 퇴근을 반복하며 자리 지킨 지 1년여 끝에 합병이 되었고 업무 분장을 할 때도 눈치껏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줄 아는 일이 있어야 하고 싶은 일도 있을 텐데 둘 다 없는 나는 그냥 불러만 주면 땡큐였다. 게다가 흡수 합병을 당하는 입장이었으니 나 이러다 평생 놀고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며 매일같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면서 돈 버는 그런 땡보직이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데려다 가르치면서 쓰자는 팀이 있었으니, 합병 후 제일 빠르게 업무 분장을 받았다. 그렇게 발령받아 출근한 부서는 코어뱅킹이 아닌 분석 위주의 프로젝트 기반의 젊은 팀장이 이끄는 팀이었고 나는 막내를 담당했다. 하지만 합병을 하며 여러 조직이 합쳐지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의 직급은 이 바닥에서 구르며 잔뼈가 굵어진 계약직으로 입사했던 두 살 연상의 그녀보다 높았다. 몇 차례 밥과 커피를 얻어마신 거 보면 그녀가 처음부터 나를 미워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오기 전에 막내였던 그녀에게 나는 여러 가지로 눈엣가시였는지 도통 업무를 알려주지도 않고 커피타임에서 배제시키더니 결국은 말도 안 걸었고, 2년 차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녀에게 살갑게 다가가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도 안 하는 사이가 되었고, 의외로 동정표는 나에게 던져져 친절히 알려주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물어보고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녀는 그들 중 한 명과 커플이었으니, 그가 나에게 말이라도 거는 날은 그 커플이 싸우는 날이었고 그래서 많이 못 도와줘 미안했다는 이야기를 몇 달 후 술자리에서 듣게 되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미워하기는 처음인지라 매일이 지옥이었다. 그 후로 조직개편이 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지만 난 그녀를 잊지 못한다. 나의 고운 갈색머리가 바람에 날릴 때마다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던 새치의 원흉이자 27살에 처음으로 오징어 먹물 염색이라는 걸로 새치커버를 하는 좌절감을 안겨준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27살 이후로 소원대로 백설공주의 흑발을 갖게 되었으나, 한 달에 2센티미터 이상을 자라나는 왕성항 발모력은 나를 미용실 VIP로 만들었다.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속도는 야한 꿈과는 관계없음을 당당히 밝힙니다. 그렇게 긴 흑발머리를 휘날리며 출퇴근을 하다 우연히 회식자리에서 들은 별명이 있었으니 '본점 10층 프란체스카', 내가 드라마를 즐겨 보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심혜진언니의 프란체스카가 뭔지는 알았다. 그 충격에 앞머리를 일자로 자르고 출근하자 클레오파트라가 왔냐는 첫인사에 쿨하게 펌을 해버렸다. 그렇게 쭈욱 흑발로 살다 백발이 된 거냐고? 아직 40대에 백발을 논하기엔 내가 너무 불쌍하지만 반은 맞고 받은 틀리기에 조금만 불쌍하기로 하자.

본점 10층 프란체스카 (좌)와 파마한 클레오파트라 (우)

결혼준비를 하며 밝게 뺀 머리는 의외로 마음에 들어 그 이후로는 그나마 머릿결에 좋다는 헤나 염색을 하게 되었다. 임신, 출산 후 미용실 갈 시간도 없는 삶은 헤나를 이용한 셀프염색을 하며 미용실 VIP에서 셀프염색 장인의 길로 나를 인도했다. 헤나 염색의 덕인지 머리칼은 굵고 튼튼해졌고 그래서 더 풍성한 건강모가 되었으나 의외로 새치커버가 잘 안 되고 풀냄새가 심한 단점이 있었다. 그러다 나의 최애 BTS의 태형이가 밥아저씨 머리를 하게 되었으니, 미용실 퇴짜 3번 만에 나 역시 태형이를 손민수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내 앞에 걸어가시는 익숙한 헤어스타일의 어르신 두 분을 보는 순간, 우리 셋은 누가 봐도 완벽한 빠마시스터즈였다. 근데 뭔가 좀 다르다. 어르신들의 백발에 비해 내 머리는 통일감이 없다. 이젠 새치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흰머리가 너무 많이 늘어서 커버가 안된다

빠마시스터즈 큰언니, 작은언니 (좌)와 막내 나(우)

그래서 결심했다. 그냥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해보자! 오히려 밝은 머리로 염색을 하니 새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흰머리가 올라와도 티가 나서 보름마다 신경 쓰이던 뿌염을 한 달도 넘게 맘 편히 버티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밝아지는 머리에 익숙해지고 최근에는 아이 친구 엄마들이 자기들 중에 내가 제일 어린 줄 알았다는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하기 싫은 칭찬도 듣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만난 직장 동료들의 자기들 주위의 초등맘 중에 내 머리가 제일 노랗다는 말이 머리를 맴돈다.

결혼준비로 탈색 6번만에 오징어먹물 걷어낸 나와 자연갈색 내동생 (좌)와 초등맘중에 머리 제일 노란 엄마(우)

사실 나도 직장 동료들의 말을 듣기 전에 그리고 최근 찍게 된 단체사진 속의 내 모습을 보기 전에는 머리가 이렇게 노란 줄은 몰랐다. 몰랐기에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천천히 변해가는 머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거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내 머리색이 신경 쓰이거나 진하게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남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나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든다. 직장생활을 하며 말 한마디에 헤어스타일을 바꾸던 내가 여전히 타인의 말을 신경 쓰긴 하지만 휘둘리지는 않는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막고 있던 벽 하나를 뛰어넘고 좀 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외모와 보이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니고 그 다름은 이유가 있는 다름이기에 존중해야 한다.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의아해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그럴 수 있는 일들이 되었다. 어찌 보면 나는 대부분의 초등학교 엄마들, 아니 학부모들과는 다른 머리색이지만 이건 다름이지 틀림이 아니다. 내 머리색이 노랗게 변했다고 해서 내 알맹이가 변한 것은 아니다.

내 머리색이 어때서?
난 내 노란 머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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