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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Dec 05. 2023

밝은 색 패딩을 처음 산 날

그렇게 너를 보낸다.

딱 1년 전 오늘이다.

처음으로 크림색의 패딩을 구매했다. 평소에도 밝은 색 패딩을 입고 싶었지만 보면서 지나치기만 할 뿐 걸쳐보지도 못하던 색상이다. 주로 검은색, 짙은 카키색, 남색 같은 어두운 계열의 패딩을 고르게 된다. 용기 내어 빨간색 패딩을 사 입은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밝은 색을 입기에는 내 몸이 너무 부담스럽다. 신랑과 아이와 식사를 하러 들른 마트에서 혼자 돌아다니다 눈길을 끄는 패딩을 보고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걸쳐보았다. 누가 볼세라 거울 앞에서 혼자 걸쳐보고 금세 벗으려 했는데 어느샌가 다가온 직원이 사이즈가 잘 맞는지를 봐줬다. 습관적으로 검은색은 없냐는 질문을 할 법도 한데 순식간에 이 크림색의 패딩을 결재를 하고 그대로 입고 매장을 나왔다.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색이다.


그렇게 다른 날과는 다른 이상한 날이었다.

아이가 유치원 졸업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사에서 화동을 하는 날이어서 오랜만에 셋이서 성당을 찾았고 고해성사를 본 날이다. 전날 밤 배가 많이 아팠고 멈추지 않는 피에 생리대를 하고 가방에 챙겨서 집을 나선 날이다. 유난히 창백해서 더 크림색 패딩이 잘 어울렸던 날이다. 배가 아팠지만 아이와 신랑과 외식이 하고 싶었던 날이다. 원래대로라면 덕질하는 BTS의 멤버 생일 행사를 하러 카페로 가야 했던 날이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우리를 찾아왔던 기쁨이를 7주 만에 보낸 날이다. 검은색보다는 미색이 어울리던 날이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일까? 신랑과 둘째는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했기 때문일까? 내 나이가 너무 많아서일까? 셋이 지내기도 빠듯한 금전적인 부분 때문일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 때문일까? 어느 한 가지의 이유가 아닌 이 모든 이유로 나는 그렇게 슬프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마트에서 점점 아파오는 배를 부여잡고 집에 와서 사람이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게 접혀 끙끙 앓는 내 몸이 더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게 한참 같았던 순간이 지나가고 내 몸에서 무언가가 없어졌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마음껏 울고 나서 나보다 더 울고 슬퍼하는 아들을 위로했고 허망해하는 신랑을 다독였다. 그렇게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1년 정도 신혼을 보낸 후 임신을 계획했다. 내가 원하면 당연히 임신이 될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게 임신이더라. 한 차례의 계류유산을 하고 직장 스트레스 때문이란 생각에 인사부에 찾아가 불임휴직을 하겠다고 생떼도 써보다가 마음 비우기에 돌입하자마자, 임신준비 10개월 만에 생긴 첫 아이이였더. 그런데 7년 만에, 45세라는 나이에 임신이라는 거를 또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임신이 이렇게 쉬운 거였다니 신랑한테 우리가 마음만 먹었으면 4명은 낳았겠다는 자신감도 부려본다.

아이 초등학교 책가방 준비하면서 기저귀 가방을 같이 준비할 뻔했네. 여름방학 기간 중, 아이와 박물관을 가며 지금쯤 막달이었을 텐데 진짜 덥고 힘들었겠다. 아기가 태어났다면 손 많이 가는 초1 아이에게 신경 써줄 수 없었을 텐데 어쩔 뻔했어. 모유 수유하느라 잠 못 자고 있었겠네. 환갑잔치에 교복 입은 아이랑 사진 찍을 뻔했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기쁨이를 보낸 일을 다행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오늘, 카페 행사를 향하는 길에 핸드폰에 뜬 구글포토의 알람을 보기 전까지는 난 그렇게 괜찮게 살았다. 정신없이 행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용기를 내어 알람을 눌러 확인한 1년 전 오늘 사진첩의 내 눈은 많이 슬펐다. 내 아이의 부은 눈과는 달리 울지 못하던 1년 전의 나를 대신해 지금 울어본다. 고작 7주였다 생각했지만 그 작은 태아도 내 아이였고 출산과 비길 수는 없지만 그 생살을 찢는 듯한 아픔도 이별이다. 생각지도 못한 임신이었지만 먹고 싶은 음식이 바뀌고 배를 쓰다듬으며 잠자기 전 잘 자라는 말을 했었다. 아이가 동생에게 지어준 기쁨이라는 태명을 함께 부르며 노래도 불러주었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맘카페, 육아카페를 기웃거리며 고령임신, 40대 임신, 45세 임신을 검색하고 힘을 받았었다. 첫째 임신때와는 달리 지하철도 타고 임산부 지정석에 앉아서 손하트 인증샷을 찍기도 했었다. 난 그렇게 기쁨이를 기다리고 설레었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설레었어서 사실 많이 슬프고 속상하다. 그리고 오늘은 많이 울고 내일은 부은 눈 때문에 집콕을 할 예정이다.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내 아이는 여전히 동생을 바란다. 며칠 전에도 하느님한테 기쁨이를 다시 뱃속에 넣어달라고 기도할 테니까 엄마 소변 묻으면 2줄 생기는 그거 해보라고 한다. 그러더니 기도했다며 커피, 맥주 마시지 말고 물 많이 마시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다음 날 잠들기 전, 확인했냐는 질문에 했는데 한 줄이라고 대답하니 많이 속상해한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의 성교육 수준은 이 정도인가 보다.


나의 연두빛깔아이야, 그냥 우리 셋이 잘 살자. 나보다 네가 애 낳는 게 더 나을 거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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