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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Dec 28. 2023

JJ에게

EJ가

오랜만이야. 2018년 늦봄이던가? 우리의 생일 즈음에 만났던 거 같아. 결혼하고 아기 낳고 정신없이 살다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장례식장 사진에 네가 연락을 했더랬지.

석촌호수 근처 어딘가에서 너와 마주했을 때가 내 결혼식 이후로 거의 5년 만이었나 봐. 그때 많이 고마웠어. 내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너였어서. 사실 생각지 못했거든. 힘든 연락이었을 텐데 전화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 후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울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고 또 5년의 시간이 흘렀지. 우리의 카톡이 다시 울린 건 친구 엄마의 부고 소식이었지. 단톡방에서 울리는 메시지들을 보고, 어떻게 지내나 당연히 잘 지내겠지만 제일 궁금했던 건 너였어. 너에게 따로 연락할까 고민하던 중에 카톡이 왔고 바로 보자고 날을 잡았더랬지.

그러길 참 잘했어.

오늘 5년 만에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많이 설레고 삼성역 사거리 그 막히는 길이 다른 날보다 더 야속하더라. 공사 중이라 원래 막히던 길이었는데 오늘따라 도대체 무슨 공사인지가 참 궁금했어. 현대백화점 앞의 그 짧은 거리의 신호등 2개는 나를 위한 건 아닌가 봐. 오늘따라 왜 내 앞에서 빨간불이 되는지... 약속시간 10분 전 도착해 주차를 하고 오랜만에 백화점 구경할 겸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려 했는데 도착했다는 네 카톡에 엘리베이터로 바로 올라갔어. 한눈에 너를 알아볼 수 있겠더라. 넌 변한 게 없었어.

"너 보는데 울 거 같아."

"우리 울지는 말자."

너 다운 대답에 눈물대신 웃음이 나더라. 그리웠나 봐.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직장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학창 시절 이야기.

너의 행복했던 기억에 나와 함께 했던 그 순간이 있다고 했지.

나 역시 그래. 내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교 시절에 네가 있고 그게 나에게도 행복한 추억이야.

맛난 밥 사줘서 고마워♡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같은 반이었지만 우린 접점이 없었지. 키가 큰 편인 너와 작은 편인 나의 자리도 멀거니와 바른 모범생 이미지의 너와 장난꾸러기 까불이 나는 물과 기름 같지 않았을까? 새벽에 다니던 학원에서 너를 봤을 때 그래서 좀 의외였고, 수업 후 자전거를 타고 가던 네가 참 멋졌어. 일반 자전거가 아니라 얇은 바퀴의 자전거는 너랑 잘 어울렸어.

사실 그때, 그 학원을 왜 다녔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과목을 배웠는지도, 선생님은 남자였던 거 같은데 확실치도 않아. 아니, 대학로 소극장에서 여행스케치 공연을 보여줬던 그 여자 선생님이셨나? 그냥 너와 같은 학원을 다녔었구나만 기억이 나. 네 말대로 새벽 학원을 다니느라 일찍 자고, 학교에서 졸고, 공부를 위한 솔루션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친구들과 헤어져 이과반에 혼자 갔을 때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사실은 참 위축되었어.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과반의 학구열과는 안 어울리는 소란스러운 아이였거든. 그래도 한자가 싫다는 이유로 선택을 했으니 어쩌겠어. 그동안 자란 키가 너와 엇비슷 해졌는지 뒷자리에 앉게 되고 그 주위에 있던 친구들과 무리가 지어지며 너랑도 같이 도시락도 먹고 매점도 가고 생일도 챙기는 친구가 되었지.


나도 기억나.

도서관에서 야간자율학습하던 그날을. 옆자리에 앉아 워크맨으로 라디오 듣다가 DJ가 되어서 라디오 진행하며 그렇게 즐거워했더랬어. 나뭇잎만 굴러도 즐거운 낭랑 18 세라지만 우리 참 즐거웠다. 학교 스탠드에 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기억도 있고 둘 다 베이시스를 좋아했던 공통점도 기억나. 너도 전람회 좋아했었지? 우리 음악 취향이 좀 비슷했던 거 같아. 결혼 후 짐을 정리하다가 네가 녹음해 준 테이프를 보고 추억에 젖기도 했어.


고3 때도 같은 반이 되었고 네 말대로 97불수능을 보고 난 다음날, 왜인지는 모르지만 수능을 망쳐서 재수를 하겠다고 눈물을 보이던 네 옆에는 내가 있었어. 울고 나서 했던 이야기 기억나? 수능 보고 내 앞에서 울 줄 몰랐다고 내가 이과반 온다고 했을 때 같은 반 되지 말게 해달라고 했었다며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난 참 시끌벅적한 아이였어. 난 그때를 우리가 좀 더 가까워진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어. 매번 어른스럽고 강하다 생각했던 너의 눈물을 보아서일까, 네 솔직한 생각을 들었지만 수긍이 되서일까, 그 후로 네가 더 좋아졌어.

놀아도 학교에서 놀면 대학교 간대

라고 말하던 네 주문 덕인지 우린 대학생이 되었고 다른 대학교를 갔지만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냈지. 성년의 날 종로에서 우리가 왜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장미꽃을 한 송이씩 들고 지하철역에서 헤어지던 그 순간과 나도 성년의 날 약속이 있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이 나. 남자친구와 함께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성년의 날이었어. 아니 어쩌면 우리였기에 계속 곱씹으며 추억할 수 있겠다.

학교 축제에서 우리 과 주점에 놀러 와 밤새 술 마신 일, 한밤에 너네 집에 데리러 가서 놀러 가던 일, 연예상담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담을 했던 일, 친구들의 졸업식에 갔던 일, 누군가의 결혼식, 그리고 너의 결혼식. 미용실에서 내 차로 결혼식장으로 이동했던 거 기억나니? 내 기억이 맞긴 한 건지 나도 나이가 들어서 가물가물하네. 원래 예쁘던 너 그날 진짜 예뻤어!

그리고 나도 결혼을 하고, 둘 다 엄마가 되고, 각자 직장생활을 하고, 그렇게 살면서 잘 지내겠지 생각은 하며 생일날에만 연락을 하다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끊어지고 살더라. 그래도 생일날에는 매번 기억해. 나보다 5일 늦고 내 아들보다 하루 늦은 너의 생일을 어떻게 잊겠어.

내년 8월에 복직한다고? 내년 생일은 우리 같이 축하하자! 그때는 내가 쏜다! 우리 술도 한잔 하자! 대학교 그 시절처럼.

담엔 같이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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