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분노하지 않았다. 욕이 나오지도 않았다. 영화라서 그렇다기엔 허구가 아님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MZ를 넘어 일부 알파세대도 알고 있다. 왜 나는 분노할 마음가짐과 찰진 욕을 날려줄 각오로 영화관에 들어갔지만 담담히 보고 나온 것일까? 왜일까?
너무 잘 알고 있어서라고 결론지어 본다.
채 20개월이 되기 전에 일어난 12.12였는데 나에게는 새롭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내 주위에 12.12나 10.26의 연관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부모님이 5 공화국 때 특혜를 받은 적도, 핍박을 받은 적도 없다. 나는 언제부터 알고 있던 것일까?
30대 초반 어느 12월 12일, 날도 참 그지같이 잡았다고 기대하지 않고 소개팅을 나간 날보다는 이전이다. 그날 정말 정우성처럼 키 크고 잘생긴 남자를 만났더랬지.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 제주 4.3 관련 연극을 보며 너무 울어서 감독이 4.3 사건 관계자냐고 물었던 그때도 이미 4.3에 뒤이은 5.18의 민간인 학살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
10대 사춘기 시절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 쉬는 시간마다 뒤돌아서 친구들과 종이와 펜을 꺼내 삼청교육대, 5.18을 떠들어 대며 사춘기의 이유 없이 들끓는 분노 폭발을 넘어 해소까지 시키고 있었다. 그 시절 정치인과 재벌에 대한 혐오와 분노는 사춘기를 넘기는 힘이었고 우린 다음날의 대화를 위해 스스로 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송파의 정치색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거 같다.
초등학교 시절 안방 문갑 깊숙이 있던 막내 삼촌이 맡긴 절대 보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하는 책을 엄마 몰래 펼쳤다가 너무 놀래서 덮었던, 지금은 검색만 해도 나오고 뉴스에서도 많이 보이는 그 사진을 보아서일까? 그때 책 옆에는 비디오테이프도 있었다.
아니면 걷지도 못하던 갓난아이가 엄마 등에 업혀서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간 고모 면회로 서대문 경찰서를 갔던 조기교육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이대 총학생회고모는 학생운동하다 만난의대생과 결혼했다. 부럽다.
그렇게 난 이미 알고 있었고, 충분히 분노했고, 당연히 지금도 분노한다. 그래서 새롭게 더 분노할 일이 없었나 보다.
사춘기 때 읽던 쇼펜하우어, 완독 못 함. 지금 읽으라면 못 읽음. 왜 가지고 있는지...
어린 시절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아빠는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장군,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의 역사 이야기를 해주셨다. 정원이 있던 집으로 기억하는 거 보면 국민학교 2학년 이전인 듯하다. 다행히도 나는 아빠의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아빠는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해주면서 지역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냥 예전부터 지역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했고 굉장히 오래된 감정이었다 정도만 알았고 그건 아픈 역사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빠와 함께 조선왕조 오백 년, 제*공화국 시리즈, 청문회 등의 티브이를 즐겨보면서 아빠의 정치관은 핏줄이 흐르듯이 나에게 흘러 들어왔다. 어른이 되어보니 정치관 차이로 부모와 시댁과 심지어는 남편과 대화가 힘든 경우들을 보면서 결혼 상대자의 정치관은 종교 다음 순위가 되었다. 다행히도 종교 단체에서 만난 남자와 시부모님의 정치관은 나와 같았으니 이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3번째는 야구였는데 이건 달랐다.
도대체 정치가 뭐길래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조건 아닌 조건이 되었을까? 원래는 키 크고 잘생긴 남자였는데...
우리가 숨 쉬는 공기 한숨, 우리 옆의 돌멩이 하나까지도 정치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를 들어, 2015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나저나 이것도 12월 12일이군.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도로 체결된 파리협정은 도널드 트럼프 당선 후 탈퇴를 선언하고 195개서명국 중 유일하게 미국이 탈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조 바이든은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한다. 사실 정치적으로 무슨 이견이 있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이 파리협정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출발해서 1990년 수준의 온실가스로 돌아가서 지구와 지구인을 지키자는 중요한 취지를 담고 20년이 넘게 걸려 만들어진 지구촌 협정이었다.
최근에도 정치와 환경이 연관된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라고 하겠다. 2023년 12월 23일 20시 40분에 SBS에서 보도한 기사로 갈음하겠다.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2024년 2월 4차 방류는 그대로 진행한다고 하고 제발 오염수 탓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원전 오염수' 때문 아니냐는 이 의혹을 중국에서 제기했었는데, 영국 언론도 비슷한 보도를 했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
나는 정말 내 아이가 살아 숨 쉬는 공기와 먹는 음식이 걱정된다. 우리 세대야 이미 노화가 진행되는 나이지만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내 아이와 그 어린 친구들에게 지구가 아파 그래서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아침마다 마스크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미세먼지량을 확인하는 아이가 안쓰럽다.
그리고 내 아이가 나와는 다른 정치관을 갖지 말기를 바라는 욕심을 내 본다. 아빠가 나에게 그랬듯이 나 역시 아이에게 핏줄 흐르듯이 가스라이팅 중이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의 목소리 하나는 작지만 그 목소리가 모이면 그 울림이 얼마나 커지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그 맘 담아 열심히 영화 예매를 한다.
아들, 문재인입니다 함께 봐줘서 고마워. 내년에는 길 위에 김대중 같이 보자. 엄마도 뽀로로 극장판 슈퍼스타 대모험 같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