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삼촌이 계신 성당을 가는 30분 동안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막내 삼촌은 나에게 신경안정제 같은 분이지만, 그 당시 남자에게 따로 언급한 일이 없으니 나를 위한 건 아닐 터였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뵙기 전부터 주례를 부탁드리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도 지금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막내 삼촌이라 가기로 했다.
만남 1. 신부님 투어
남자는 신부님인 여자친구의 삼촌께 고해성사 아닌 고해성사를 했다. 전날 남자의 부모님이 점집을 가서 궁합을 보셨는데 무조건 헤어져야 하는 궁합이라 점지했단다. 결혼하자마자 남자는 찬밥신세가 되고, 40대에 불구가 돼서 쫓겨날 거고, 집안 재산은 10퍼센트만 남고, 아들은 못 낳아 대가 끊길 거라는 악담 아닌 저주를 듣고 오셨다. 꽤 유명하고 이미 몇 차례 지인의 점을 맞춘 곳이니 확실하다는 신념을 가지신 듯하다. 그러니 어찌 보면 헤어지고 오라는 말은 꽤 합리적이고 부모라면 당연한 처사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신념을 뛰어넘는 우주의 섭리로 뭉쳐진 남자와 나로서는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납득이 안된다.
다 들으신 삼촌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으셨고 남자는 설득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기도를 부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도 확신이 필요했던 거 같다.
삼촌과 헤어진 후, 남자 부모님이 다니시는 성당을 가서 주임 신부님을 뵈었다. 상황 설명을 들으신 신부님은 혈연이 엮이지 않다 보니 오히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첫째, 신자 중에 점 보는 사람 많다.
둘째, 이럴 경우에는 좋은 점이 나올 때까지 봐야 한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만남 2. 점집 투어
남자는 지인들을 통해서 잘한다는 점집을 수소문했다. 둘이 방문을 하고 점괘가 잘 나오는 곳을 골라서 부모님께 잘하는 곳이라며 추천을 했다. 좋은 점괘에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수록 남자 부모님도 이와 같은 심정이었구나 싶다. 점집으로 나가는 지출이 많아졌지만 우리가 결혼할 확률이 높아진다 생각하니 이 정도 소비는 혼수라고 생각하고 감내할 만했다. 마지막으로 철학관을 한번 가보자는 부모님 말씀에 남자는 유명하다는 철학관을 예약했다. 미리 가서 둘의 궁합을 확인하고 주말에 남자가 부모님을 모시고 올 터이니 잘 부탁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고 나왔다.
결전의 날, 철학관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해주었던 덕담을 남자 부모님께도 말씀하셨고, 드디어 며칠 후 부모님을 뵙기로 했다. 헤어지고 오라고 한 다음 날부터 시작했던 54일 묵주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54일만 기도로 버텨보자 했는데 생각보다 빠른 응답은 잡신이 아닌 하느님 덕이라고 믿는다.
54일 묵주기도 첫날, 기도하다 본 초는 하트를 품은 성모님 형상이었다.
만남 3. 부모님 투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강한 결속력으로 묶인 팀워크를 가지게 됐다. 집안에서 연상연하를 반대한다며 사귀자는 말을 거절했던 그 남자와는 전혀 다른, 믿음직하고 단단한 남자가 내 옆에 있었다. 남자를 따라 들어가 무조건 환대하지 않으시는 부모님을 뵙고 나왔지만, 그로 인해 남자의 결심은 더 확고해졌으니 나쁜 만남은 아니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결혼할 것이고 부모님도 나를 아끼시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이후 우리 부모님을 뵈러 온 남자를 우리 집 강아지가 제일 먼저 반겼다. 이전에 동생들이 데려온 남자들을 물었듯이 내 남자 역시 다리를 물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번의 경험으로 미리 조언을 해서 살짝 긁히기만 했지만 상처는 상처인 터. '그래 네 인생은 누나가 책임질게. 잘했어 똘이야' 충견의 소심한 복수로 치자.
두 번째로 남자 부모님을 만난 자리에서 예쁜 핑크색 지갑을 건네주시며 결혼식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셨다. 지난주까지 그렇게 알아봐도 없던 가장 원하던 성당이었고, 좋은 날이라서 빨리 빠진 날이라고 들었던 그날이었다.
ps. I hate you.
부모님께서는 제 시를 잘못 넣으셨다고 하십니다만 신점은 그거랑 상관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아마 당신은 돈 많아 보이는 서초동 사모님께 치성비를 뜯어내고 싶으셨나 본데 그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 엄마가 그 옛날, 이름만 들어도 아는 제일 유명하다는 작명소에서 사주받고 얻은 귀한 딸인데, 어디 그런 사기를 치십니까? 아들 낳고 전화하려고 당신 전화번호도 적어놨는데 부정 탈까 봐 그냥 참았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맞힌 게 없어서 밥은 먹고 다닐지 걱정은 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