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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y 27. 2024

씽씽, 아이싱! 케이크 만들기

- 꿈을 갖게 하는 칭찬 한마디.

케이크 시트 1호는 4인 가족이 즐기기에 딱 적당한 크기이다.

시판용으로 파는 케이크 1호의 높이는 생크림의 두께가 인색하다.


시폰케이크처럼 생크림을 듬뿍 얹어서 아이싱(생크림으로 케이크 시트를 덮는 행위)을 하게 되면 시트를 삼등분한 두께와 생크림의 두께가 비례하면서 케잌의 풍미를 높일 수 있다.


큰아이가 6학년이던 해, 

졸업을 앞둔 아들 친구들에게 추억 하나 담아주고파서 시작했던 케이크 수업이 어느새 학교의 정기적인 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이후 나는 6년 동안 매년 12월이 되면 으레 일정을 기다리게 되었다.


케이크 꾸미기 카페가 유행하기 전이었기에, 이 수업을 통해 첫 경험을 한 친구와 엄마들, 그리고 나의 지인들까지 모두 캐럴은 없었어도 설레는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녹번동 오래된 빵집을 찾아가 업소용 오븐에 케이크 기본 빵인 시트를 백오십개 정도를 만들고, 한 번에 15킬로그램의 생크림을 휘핑할 수 있는 기계로 수업 이틀 전부터 기본 준비에 들어갔다. 


한 번에 삼십 명에 가까운 아이들에게 스페츌라(아이싱할 때 쓰는 도구)를 모두 줄 수 없어, 플라스틱 칼로 아이싱(생크림으로 빵을 덮는 행위)을 하게 하면 아이들의 성품이 바로 드러난다. 

생각보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일이다.



아이싱이라는 용어를 잊지 않게 하려고, 눈썰매 타듯, 씽씽! 아이싱! 노래를 불러주며, 팔을 휘젓는다. 이내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잊어버리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꼼꼼한 아이, 주도면밀한 아이, 디자인을 하는 아이.

대충대충 한 줄 알았는데 결과물이 잘 나오는 아이.

너무 꼼꼼히 하다가 시간을 놓쳐 끝물에 흐지부지하는 아이.


한 시간이어도, 선생님이 멍석을 깔아도 될 만큼 내 눈에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성품이 들어온다. 

딸기를 썰어라 말아라 하지 않아도, 한 사람에 몇 개씩 주면 각양각색으로 꾸며서 정말 멋지게 만들어 내곤 하였다.

<photo : 2023.12. 6세 아동의 케이크 만들기>

그 중에 디자인 감이 뛰어난 한 학생에게 큰 소리로 칭찬하였다. 

그 학생은 반에서 유난히 부산하고, 4차원적인 말을 자주 한다고 아이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소곤대곤 하였단다. 아이 중 가장 꼼꼼하고, 보통 초콜릿을 바르게 꽂지만 아이는 거꾸로 중앙에 네잎클로버 모양으로 선을 그어 디자인하여 케이크를 만들었다. 


"어머나, 세리야! 너무 멋지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우리가 흔히 보던 케이크가 아니네. 

너만의 상상력으로 만든 멋진 케이크구나"


아이들은 삼삼오오 그 아이의 케이크를 보러 자리에서 모여 들었다. 담임선생님도 그 아이의 케이크를 보고서 감각이 있다며 같이 칭찬하였다. 

그 아이가 한예종 디자인과에 입학한 후 인사 전화와 편지가 왔었다.


칭찬 한 마디는 한 사람의 꿈을 시작하게도 한다.

내게도 무척 보람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연말에 프랜차이즈 케이크를 사지 않는다.

전날 밤에 휘핑한 생크림의 고소함을 따라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홍대 앞에 '피오0'라는 딸기 케이크 전문점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아이싱할 때 생크림의 두께에 민감해졌다. 그 케이크 집의 생크림이 유난히 하얗고 두터워서 한 입만 먹어도 입술에 하얀 꽃이 필 것 같았다.


그 두터운 행복감을 케이크 수업에 담아서 아이들이 집에 들고 가기를 바랐다.

의기양양 아이들은 하교길에 고이고이 들고 가서 가족들 앞에서 자랑질이다.


아이싱 높이가 높이 올라가서 풍부한 생크림과 딸기를 느껴보라는 마음과 같이 아이들의 자신감도 으쓱으쓱 이다. 


"아빠, 언제 와. 같이 촛불 켜야 하는데, 이거 내가 만들었다요"

"엄마, 가운데 가장 큰 딸기는 내가 먹을거야! "


시끌벅적 하얀 생크림 케이크.

씽씽! 아이싱!
하얀 꿈으로 달려가는 신나는 케이크!




photo:2014. 12. 여고동창 5명과 만든 산타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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