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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y 20. 2024

밥밖에 해준 게 없어요!

- 묵은지 말이 밥

중학교 하교 시간 3시 또는 4시.


특목고 입시이건, 대학교 입시이건 수학학원은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또는 세 번을 가야 한다.

학부모들은 내 자식 한 명, 또는 친구와 묶어 당번제로 아이들을 그야말로 학원으로 실어 나른다.

4시30분에 첫 번째 타임을 시작해야 수학 4시간, 과학 1시간 30분 등 두 과목의 수업을 교습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밥을 따로 먹을 시간이 없다.


학교에서 학원가로 이동하는 이삼십 분의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학원가에 김밥, 어묵, 도넛 등. 온통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손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와 분식집이 가장 많고 사업이 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월 중순 넘어갈 즈음 김장 김치가 두 번째 숙성 시기를 맞듯 새롭게 맛이 무르익는다.

이즘부터 나는 김치전과 김치찌개 등 김치로 하는 음식에 신나서 더 자주 밥상에 올리곤 하였다.


작은 아들이 다닌 중학교는 바로 집 앞이었다.

학원 가기 직전 들르는 편의점 모양으로 아들 친구들을 매일 불러서는 밥을 먹고 가라고 하였다.

실은 큰아들을 키워보니 막내는 그저 잘 먹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너그러운 여유가 생겨서 우리 집을 학교 앞 분식집화 하였다.


김치볶음밥을 서너 그릇 해두고 달걀후라이를 얹어 차려주면

"잘 먹겠습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사내애들이 능글능글하게 귀여움을 떨곤 했다.


어느 날.

김치를 썰지 않고 한 잎씩 떼어내어 물에 담갔다가 꼭 짜서는 물기를 가시고 쫙 펴둔다.

참치와 참기름, 참깨와 골고루 섞어 둔다.

섞은 밥 한 숟가락씩을 얹어 돌돌 말고 있는 찰나에 현관문을 박차고 후다닥 들어오는 한 무리.


"배고파요."

"어서 손 씻고 와."

"그게 뭐여요" "어서요, 지금 먹을래요"


손 씻고 오라고 재차 말도 하기 전에

이미 내 손은 아이들 입에 한 말이 씩 넣어주고 있다.


벌레를 잡아다 입에 넣어주는 어미 새 모양의 나.

받아먹는 새끼 새 모양의 아들과 친구들.


"왜 이렇게 맛있어요. 초밥 같기도 하고, 고기 맛도 나고"

이제 품평까지 진지하게 쏟아낸다.

남자아이들 먹성에 한 잎으로 크게 말았던 묵은지 말이 밥.


요즘은 김치 세 잎을 김처럼 펼치고 말아서는

김밥처럼 어여쁜 자태를 뽐내려 썰어낸다.

감칠맛이 진한 묵은지 말이 밥.


그 감칠맛에 밥 먹여준 추억은 잊지 못하는지 고등학생이 되고 스무 살이 되어도 이따금 안부를 물어온다. 햄버거와 피자보다 든든하게 먹고 갈 수 있어 좋았던 추억이라고 떠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학원으로 이동하는 차 안.

그 자동차 안에는 운전까지 하는 엄마가 집에서 싸 온 주먹밥, 과일, 쵸콜릿, 집에서 짠 과일주스 등이 다반사였다.


"특별한 교육법이 무엇인가요?"

"밥밖에 해준 게 없어요!"

엄마의 밥심!


고등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아이들은 독립심도 강하고, 주체적으로 공부와 생활을 하려고 한다.

엄마들은 따뜻한 아침밥과 야간자율학습, 학원을 마치고 집에 와서 먹는 야식 챙겨주는 거 말곤 한 것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직접 만들지 않아도 사 온 음식이건, 도시락으로 만든 음식이건

'체력은 국력이 아니라,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챙겨준 밥이 합격'이라고 학부모들은 이구동성 말한다.


내 묵은지 말이 밥도 알고 보면 김치냉장고에 채워진 김치 덕분이다.

그 김치를 채워준 건 친정엄마이시고,

사랑이 내리사랑이라 하지 않던가.


엄마가 만든 음식으로

엄마의 엄마가 만든 음식으로

사랑이 흘러 흘러 사람을 키운다.




photo: 2023년 3월

스무살된 작은 아들이 친구들과 먹은 묵은지 말이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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