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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y 13. 2024

부리또

부리또 수업을 하는 날엔 유난히 설렌다. 


부리또는 스페인어로 말아서 싸 먹는 멕시코 음식이다. 

또르띠야에 콩과 고기를 넣어 먹는 멕시코 음식이다. 


멕시코 국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선인장 위에 앉은 독수리와 뱀이 있다. 

선인장 위의 독수리 그리고 뱀은 태양과 대지, 불과 물을 상징한다고, 아이들에게 수업 도입 부분에 설명한다.  


다른 나라의 국기를 이렇게 자세히 설명할 일인가 싶지만, 다른 나라의 국기에도 상징하는 바가 있듯, 

우리나라 태극기에 담긴 뜻도 각각 그 상징성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를 같이 설명하는 수업.


그런데 국기의 상징성보다도 내가 '부리또' 수업을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부리또는 또르띠야, 양상추, 닭가슴살, 노랑과 빨강 파프리카, 게맛살, 치즈를 재료로 하고, 아이들에게 양상추와 게맛살을 찢으라 하고 가슴살도 찢어 보라고 한다. 파프리카는 4등분한 것을 다시 2등분하여 썰어보라고 한다.


이제 동그란 또르띠야 위에 요리 재료를 가지고 자신의 얼굴을 그려보라고 한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1학년과 2학년 1학기 시기의 아이들이 부리또의 재료를 준비할 때 나타내는 그 손질 형태는 제각각 모두 다르다.


이 형태는 나를 설레게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도 하며, 그 형태를 말로써 표현할 때는 더더욱 대견하거나, 짠하기도 하고, 기막힌 아이디어에 놀라기도 한다. 


저마다의 성격과 아이마다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변화에 따라서 드러나는 모습은 매우 다르다.


양상추를 길게 길게 썰거나 찢는 아이, 듬성듬성 네모지게 각을 맞춰 써는 아이, 크기야 이런들 저런들 무슨 상관인가 하며 크고 작게 대충 찢는 아이, 삶은 닭가슴살을 결결이 실오라기처럼 찢거나, 뭉툭하게 재빠르게 찢었노라 하거나, 너무 썰어대서 가루처럼 보이도록 짓이기도 한다.

노랑과 빨강 파프리카를 길게 썰어두라 말하여도 기어이 손톱만큼 잘게 썰어두는 경우도 있다. 



자, 이제 얼굴을 그리자!


또르띠야가 나의 얼굴 피부이다.
양상추와 파프리카, 닭가슴살 모든 재료를 이용하여 나의 얼굴을 그려보는 것이다. 


또르띠야 동그란 원 밖으로 절대 재료가 나가지 않도록 하는 아이, 

선생님, '재료로 어떻게 하거나 상관없는 거죠'하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아이.


그 아이는 양상추로 곱슬머리처럼 또르띠야 위로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연출한다. 그리고 파프리카를 조각내어 속눈썹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 옆에 앉은 아이는 파프리카로 입을 역삼각형 모양으로, 눈썹도 45도 각도로 째려보게 배치하고 있다.


눈과 입술, 눈썹으로 아이들은 기쁨과 슬픔을 그린다. 


거기다 꾹 다문 입술이 아니라 입도 벌리고, 머리카락도 또르띠야 밖으로, 단발머리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이나, 중학생이나 아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엄마, 아빠를 좋아해요. 말하면서도 입술이 대발 나와서는 "그런데 저를 좋아 안 해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공부해야지 해요"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눈도 작게, 입도 작게 그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고마울 때가 많다. 

또르띠야 동그라미 하나를 앞에 두고, 
어느 것에도 거침없이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저 아이들이 어여쁘다. 


친구의 서운한 마음도 기쁜 마음도 수업 마칠 즈음이면 모두 "그랬구나"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너도 "그랬구나" 하면서 서로를 안아준다. 


한 명 한 명 발표를 하고 나면 아이들은 크게 박수를 서로에게 보낸다. 

"별일 아니었어, 나만 서운한 게 아니었어. 나도 사랑받고 있었어"


친구와 똑같이 그리지 않은 저마다의 얼굴을 보면서 아이들은 응원받는다. 

그래서 부리또 수업이 좋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정도의 시기가 되면 이미 아이들은 부리또 만들기가 성가시고, 규칙을 잘 지켜야 할 것처럼, 거의 다 똑같이 그리기도 하지만, 부리또 가게에서 파는 부리또를 보면서 내가 만든 경험의 성취와 그날의 응원을 아이들은 쉽사리 잊지 않는다. 


같이 요리해 본 추억은 감정으로 남기에 아이들의 손과 혀가 기억해 줄 것이다.

사춘기의 어느 날.


포근하게 응원받은 요리 수업. 멕시코 음식 부리또.

내 얼굴, 자존감!


* 위 사진 : 2024년 1월 수업 세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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