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 년 전 그날 이후부터 나는 홍합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신앙을 가져보려 사춘기 때부터 몇 번이고 시도해 보았지만,
성실해지지 않는, 말할 수 없는 거부감으로 교회에 갔다가, 절에 갔다가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로부터 본 것이 있어 여행지에서 사찰에 가게 되면 백팔배를 하고 오기도 하여 그래도 내게 가장 가까운 신앙은 불교인가 보다 하고 지낸다.
요즘 하루가 다르고, 또 하루가 다른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하루는 평화롭고, 하루는 풀 수 없는 불안감에 허우적대면서 산다.
오늘은 애처로운 누군가 그냥 하루를 버티며 산다고 내게 말했다. 맞아요.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되어요.
나도 모르게 그런 대답이 나왔다. 그냥 하루 오늘 하루만 생각하며 살자고 생각했나 보다.
다음 주면 작은 아들의 생일이다.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이맘때 아이를 잃었다. 환영받지 못한 아이!
동생이 아기를 갖지 못하고 있었을 때라 친정보다 시어머니에게 먼저 알렸다.
시어머니가 사돈도 무섭지 않아, 유산시키라고 서슴없이 전화를 건 다음 날!
그날 친정엄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니 꾸짖는 것 같았다.
현실은 내가 사는 것인데, 그리 이성적으로 현실을 각성시키며 내게 말할 일이 아니었을 터인데,
엄마는 그랬다.
며느리에게 차마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면전에 말을 못 하고, 더 독하게 친정엄마에게 유산을 시키라 말한 시어머니도 참 모질다 싶었다.
때마침 안부 전화를 주었던 친구 희영이는 지금까지도 고마운 기억이 난다.
'축하해! 괜찮아! 낳으면 낳는 대로 다 키울 수 있어'
시댁과 친정의 그 틈바구니에서 남편은 출장 갔고, 다음 날 아침 혼자 출근하던 아파트 복도에서 흐르던 피! 병원 현관에서 쏟아내었던 낭자한 핏덩이!
두어 시간 후 깨어나 집에 와서 본 들통의 미역국.
소고기 기름도 좋지 않을 거라며 엄마가 끓인 홍합미역국.
경기 남부에 사는 친구 희영이는 그날 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그때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묻지도 말고, 무조건 가야 한다.
그날 내 옆에 있어 준 친구가 아니었으면 그 미안함과 서러움에 억지로 삼켰던 미역국이 체했을 것 같다.
마음 저 밑바닥에 깔려 있던 풀지 않은 기름 덩이가 올라왔다. 그때도 무던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척 혼자 삭였던 일이 미역국을 끓이다 그렁했다.
내 뱃속 아기한테 미안하고 미안한데, 왜 그리 눈치를 보았을까! 왜 그리 서러웠을까!
그런 말을 듣도록 내 남편은 무얼 하고 있었나! 첫 아이 얻었던 기쁨도 누리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 원망이 들었구나.
미련하게 꾸역꾸역 들이켰던 국.
먹지 말았어야지.
그날 이후부터 먹지 않았다.
먹을 수 없었다.
홍합미역국.
photo: 2024.06.24. 하동관의 곰탕
사람의 희로애락 중 고부간의 애증이 모순점이 많습니다.
서운한 것은 서운했던 것이고, 시어머님의 곰탕이 가장 맛이 있답니다.
아침에 먹은 곰탕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