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기도설 Jun 10. 2024

수리수리 마수리, 호래기

 

호로록!

"음, 이 정도면 괜찮아"

엄마는 손질한 하나를 입에 넣으며 혼자서 즐거워했다.
반 평도 안 되는 좁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는 도닥도닥 칼질하고, 외할아버지가 오시는 날은 무척 분주했었다. 
"할아버지가 오시잖아, 너희들도 좋지!" 

'설레는 표정이 그런 표정일까?' 

엄마는 들뜬 목소리와 찬장을 모두 뒤져서 있는데로 할 수 있는 음식은 다 만들곤 했다. 

"아, 시장에 다녀와야지, 꼴뚜기를 사와야 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사 온 꼴뚜기! 

오징어 새끼 같은 것을 손질하면서 엄마는 연신 혼잣말한다.
외할아버지가 오시는 날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무쳐내는 엄마의 꼴뚜기 젓갈,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한 음식으로, 생꼴뚜기를 사다가 탐스럽게 무쳐내던 엄마는 16살에 엄마의 엄마를 잃었었다. 

전주 사는 친정아버지가 딸 보러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서울 친구도 없고 살림만 전념하던 엄마의 명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각 안경테를 쓰고 무척 정갈한 호남형의 할아버지는 책보기를 즐겨하시고, 점잖으신 어른의 모습이었다. 
명리학도 공부하셔서 가끔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갈 것이며, 그리고 내년의 운세는 어떠한지 시꺼먼 한자책을 펼쳐놓고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곤 하셨다.

배우 이덕화가 "부탁해요!"를 외치며 토요일 밤 텔레비전 쇼를 볼 때면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속 무용수들의 춤을 보시고는 "도깨비"라고 부르시곤 했다.

"저 도깨비들이 옷을 벗고 더 요란하게 몸을 흔드는 시대가 올 것이다. 빤스만 입고 춤을 출 것이야!

그리고 그것이 멋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고, 에그 도채비들" 
할아버지는 도깨비라고 부르지 않고 '도채비' 하며 양팔을 벌리고 크게 부르는 말에 우리는 그저 까르르 웃으며 할아버지가 좋기만 했다. 

"할아버지 빨리 보여줘요.. 보여줘" 

할아버지는 백 원짜리 동전을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에 비비신다.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마수리" 

어서 따라 외치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같이 추임새를 크게 목청껏 지르는 순간, 왼손에 있던 백 원이 없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목덜미 뒤로 백 원을 넘긴 것 같았음에도 동생과 나는 그 마술이 그저 흥겹고 신기하기만 했다.

할아버지와 셋이 머리를 맞대고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마수리' 
이상하리만큼 할아버지와 외쳐야 더 재미났던 마술. 할아버지만 할 수 있었던 마술.

스무 살 대학에 바로 입학하지 못했을 때, 가장 먼저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엄마는 "이상하다. 분명히 대학에 붙는 사주라 했는데 ."
할아버지의 명리학은 거의 맞았는데, 무슨 일인가 더 서운해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삼수를 하던 오월에 소천하셨다. 대학생 맏손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정말 속상했다.
'운세가 맞았어! 할아버지 수리수리 마수리, 같이 놀아야지 우리.'

중부시장에서 말린 꼴뚜기를 사면서 대학에 합격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동생과 함께 백원짜리 동전을 만지며 같이 외쳤던 그 말!

수리수리 마수리 나와랏! 호래기 얍!!


아! 그러고 보니 엄마는 이후 꼴뚜기 젓갈을 담그지 않으셨구나. 



photo: 인터넷퍼옴 




이전 10화 나만 먹었잖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