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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y 27. 2024

나를 추억해주는 음식

꽃 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그 제비가 꽃게 소식도 들려주는 것 같다. 

완연한 봄이 되는 6월이면 암게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우리가 맛나게 먹는 꽃게는 서해안의 안면도나 태안, 또는 강화일 수도 있겠다. 


의, 식, 주는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네 살부터 진짜 칼도 서슴지 않고 쥐여주며 키운 아들들은 고난도의 간장게장 맛에 일찍부터 눈을 떴다.


추석, 설이고 친정엄마 임 여사의 삼삼한 간장게장 맛에 가족들은 밥을 연신 퍼다 날랐다. 

두 손주 녀석의 맛 겨루기에 식탐 많은 이모부까지 합세하여, 셋은 너무나 당연하게 게딱지 두세 개를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아 했다. 밖에서 사 먹은 적이 별로 없어 몰랐다가 게딱지 하나에 이삼만 원 하는 것을 알고서는 귀하게 먹으라고 서로 웃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게장 먹방에 열씸이다.


열 살배기 조카가 게장 맛을 알게 되자, 이제는 삼파전이 아니라 팀 대항으로 겨루기하며, 명절날 밥상이 차려지는 순간, 서로 자기 밥그릇 앞에 두기를 눈치보다, 먼저 밥 위에 갖다 두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임 여사의 간장게장은 어느 한정식집에서도 볼 수 없는 맑음과 투명함이 있다.


장맛이 절대 짜지 않아, 두어 숟가락을 넣어 비벼도 게의 알싸한 비릿함과 알알이 알의 꽉 찬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방송에서 '맛간장이다' 하여 떠들 때마다 나는 콧방귀를 뀌게 된다. 

'진정한 맛간장은 이것이다.'하고 말이다. 


추석날 너무나 당연히 먹었던 게장도 알고 보니 꽃 피는 봄에 암게를 사두고, (가을 수게는 봄 암게의 감칠맛이나 알이 없기 때문에) 냉동고에 꼭꼭 숨겨 두었다가 추석 즈음하여 해동하여 담그는 지혜로운 친정엄마의 정성 덕분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생 새우장까지 그 열기를 보탠다. 


전생에 임 여사는 정경부인이었을지도, 아니면 종손 집 맏며느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친구 L이 진정한 간장게장의 광팬이다. 나는 그녀가 밥을 한 공기 이상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게장은 세 공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게장하면 가장 먼저 L이 떠오르기에, 올봄에 친정엄마에게 L에게 보낼 간장게장을 부탁하려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쯤은 알릴 필요가 있다.  


고사리를 좋아하는 시아버지, 삼겹살을 좋아하는 Y,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K 등

이처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를 기억하는 음식', '나를 추억해 주는 음식' 하나 정도 인식시키는 것도 좋을듯 싶다. 살아가면서 조금은 덜 외롭고, 더 사랑받는 것 같고, 덜 억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언급조차 조심스럽지만 임여사가 오래오래 게장 담가주기를 한 해 한 해 먹을 때마다 목구멍에 차오르는 벅참으로 기도해본다.


우리엄마를 가장 먼저 생각나게 하는 음식은 아마도 '간장게장'일 것이다. 

손주들을, 사위들을 사랑으로 채워준 음식. 

그녀가 좋아한 음식이 아닌,

그녀를 추억하는 음식으로.


간장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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