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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y 20. 2024

요리 좀 하는 아저씨

- 미역국

십 년 전일지, 그 이전일 수도 있다.

A 친구의 사무실에서 A 친구의 친구 B를 알고, B의 남편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 것인지, 그 세월이 지나고 만났음에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 생각이 났다.

아담한 키의 그녀가 꽤 차이가 나는 키 큰 남편을 두었다고 생각했던 일.

호남형의 얼굴에 하관이 좋아서 말년에 복이 많을 거라고 덕담을 나누었던 기억이 났다.


부부는 예전보다도 더 닮아 있었고, 외적으로 나이가 주는 의연함과 너그러운 여유가 있어 보였다.

주변을 보면 부부가 오십 중반쯤 되면, 어느 행동에 그다음을 알고 배려하는 부분이 있고, 작은 일에도 몸이 먼저 배려해 주는 모양새가 보인다.


아내의 친구들이 수다를 떨어도 한 자리에서 듣고 있던 B 친구의 남편은

"밥 좀 하는 남자"

우리 이야기에 자리를 고쳐 앉고, 눈을 반짝이며 미역국 끓이기에 집중적으로 레슨을 하듯 레시피 보따리를 꺼내었다.


"자고로 미역국은 두 가지 버전이 있어요.

맑은 국과 볶은 미역국이죠.

그 전에 미역을 정말로 깨끗이 빨아야 해요."


"깨끗이 빨아요!"
"무엇을 넣고 끓여야 가장 맛이 좋은가요?"

"가장 좋은 재료는 좋은 미역이죠. 그리고 홍합, 소고기, 굴이어요."


"홍합은 말린 홍합이 최상이죠."
"그리고 맛조개보다 작은 반건조 조개를 넣고 맑은 미역국을 끓이면 시원하고 아주 맛이 좋죠."


레시피 이야기에 한마디를 마칠 때마다 A 친구와 나, B 친구는 감탄한다.


아! 저분 요리의 내공이 있으시다.

일이 년 안사람을 대신해 끓인 솜씨가 아닌 듯하다.

레시피 이야기에 눈이 반짝이는 것이며,


바로 맛 좋은 미역국 끓이기는

첫째, 미역을 깨끗이 빤다.

둘째, 맑은 것이냐, 미역을 볶은 것이냐


이 버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레시피 정리하는 것을 보면 요리에 관심도 많고, 잘하는 사람이 분명한 것이다.


B 친구는 남편이 자기가 요리를 해놓고서 자기가 스스로 맛있다고 한다고 남편에게는 흘기듯 우리에게는 멋쩍게 자랑스레 말한다.


그럴 수 있어, 그건 참이야!

그 말을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간을 봤는데,

기막히게 맛있어서 저절로 나오는 말이야.

맛나다고 할 수 밖에.


장금이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하였습니다'와 같은 것이지.


자신이 만들었지만 스스로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맛이니, 맛있다고 할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음식 만들기 좋아하는 동지애를 발휘해 거들게 되었다.


요리 좀 하는 이분의 기막힌 한 마디.

맑은국은 더 어려워요. 시원하게 끓여야 하고,

국간장이던, 액젓이던 간이 맞지 않으면

'물 내"가 날 수 있어서요.


물 내, 와우 이분, 장인급이다.


친구는 행복하겠다. 맛나고 시원한 미역국을 먹을 수 있어서.

인연의 끈이 재미있어서, 세월이 지나고 이런 자리가 생기기도 하는구나.

친구와, 친구 부부와 부처님 오신 날,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다.


친구들이 내게 음식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반짝인다고 하더니,

내가 오늘 '요리 좀 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이 되었다.


누구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 사람, 물건을 향해

자세부터 고쳐 앉고, 생기로 온몸을 휘감으며 그야말로 기운을 내뿜는다.

생명을 일으키는 그 기운, 반짝임


그나저나, 볶지 않은 홍합미역국 맛이 궁금하고만!



사진 : 2024.05.20. 소고기미역국.
우리 집에서는 홍합미역국을 끓이지 않는다.(추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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