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갈 거야' , '걸어간다니까'
뒷좌석에 앉은 은수는 한사코 걷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아빠는 은수를 번쩍 들어 올려 안고는 한 번 더 자세를 편하게 해준다.
'네가 한 번 걸으면 걸은만큼 병원에 이틀을, 며칠을 누워 있어야 한다잖아! 아빠 말 듣자.'
현관문을 먼저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엄마는 은수를 달랜다.
5월의 어느 날, 내 기억에는 은수가 이마가 뜨겁고 열이 내려가지 않고는 피가 섞인 오줌을 누고, 며칠 후부터 학교를 일 년간 가지 못했다.
그 때 은수는 국민학교 2학년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급성 신우염' 나중에 커서 알게 된 병명이었다. 신장염이라고 한다.
통통하고 배가 볼록 튀어나왔던 명랑하고 귀여운 은수는 삐쩍 마르고, 기운이 없어서 집에만 누워 있곤 하였다. 마당에조차 나갈 수 없었고, 문지방에 걸 터 앉아 햇빛을 받고는 하였다.
은수가 아프기 며칠 전, 우리 자매는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날 나는 회초리로 다섯 대를 맞았고, 고집 센 은수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방바닥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엄마는 그런 은수를 바로 세우고, 회초리로 한 대 때린 순간, 동생은 그 자리에서 바지를 입은 채 오줌을 누고 말았다.
바지 사이로 흘러나오는 오줌에 엄마는 '고집이 왜 이리 세냐'며 등을 찰싹 한 대 때렸지만, 은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엄마는 은수에게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
평생 회초리를 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야단도 치지 않았다.
은수가 맞을 양만큼 내가 더 맞은 것 같다.
은수는 흰쌀밥과 굽지도 않은 생김을 작게 썰어 얹어서 그 두 가지만 석 달을 먹어야 했다. 밥도 따로 먹어야 했고, 다른 음식은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딱 하나, 우리 집에서 은수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었다. 델몬트 오렌지주스.
냉장고가 없던 우리 집에 180리터 냉장고가 들어왔다.
델몬트 주스를 보관하기 위해서, 의사선생님이 환자한테만 먹이라며 당시에는 눈앞에서 오렌지를 짜서 넣은 것인 양, 그 맛이 진하고 무엇을 타지 않은 듯 신선하였다. 냉장고에 네댓 병을 넣어두면 나는 엄마 몰래 홀짝홀짝 몇 번을 마셔보다가 정말 호되게 혼났던 것 같다.
동생이 학교도 못 가고 있는데, 지금 그게 뭔지 알고 먹느냐, 참아야 해!
보리차를 끓여 한 두병 담아두었던 오렌지주스 병.
보리차를 마시며 주스다. 주스다 하고 마시라는 아빠와의 놀이에 참을 수 있었다. 아마도 학교도 못 가고, 아빠가 매번 안아서 차에 싣고 가야 했던 그 분위기를 나도 막연히 알고는 있었나 보다.
작년엔가 코스트코에 갔다가 그 오렌지주스 병을 보았다.
사람들은 옛 추억이 떠오른다며, 사 가는 데 차마 나는 선뜻 사지 못했다.
자식을 놓칠세라 누가 볼라 밤마다 마음 졸이며 울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다. 엄마는 그날을 어떻게 견뎠을까, 할머니도 일찍 여읜 엄마의 그 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은수네 집을 갔던 날!
언니, 이거 봤어? 나 어릴 때 이거 많이 먹었잖아.
나만 먹었잖아!
생각나서 사 왔지.
델몬트 주스.
photo: 인터넷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