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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y 06. 2024

뭇국

소고기를 칼로 다독다독 칼집을 넣듯 썰리지 않게 다진다.

다져둔 고기에 마늘 조금, 조선간장으로 버무려 재워둔다.

무의 파란 부위 뿌리 부분을 국물용으로 한 덩이와 넓적한 다시마를 푹 끓여 기본 국물을 만들어 둔다.


두 가지를 합쳐 납작하게 썬 무를 한소끔 끓여낸 후, 대파를 넣어 뭉그러지지 않게 끓인다.


사촌오빠가 취직했다며 찾아온 날, 고모인 엄마는 오빠가 좋아한다는 뭇국을 끓였다. 첫 취직에 정수기를 20대 팔아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찾아왔던 오빠.


아빠는 두말없이 다섯 대를 사서 친구들에게 보내고 오빠에게 월급 받기 전 비용이 필요할 거라며 30년 전 현금 이십만 원을 쥐어서 보냈었다. (아빠도 힘든 시기였는데 정수기도 한 대당 20만 원을 호가했다) 살아보겠다고 용기 내는 조카에게 사회생활 호기롭게 시작하라는 아빠의 응원이었다.


흥이 많았던 외삼촌과 외숙모는 두 분의 사랑싸움에 오빠를 매정하게 키웠고 무척 힘들게 하였기에 일찍 독립하려고 마음먹은 오빠는 결혼을 서둘러 하였다. 엄마는 큰조카의 대학 졸업식, 신혼집에 냉장고를 보내면서, 첫 아이를 보았을 때도, 엄마의 큰조카 대소사에 우리까지 대동하여 다 들여다보곤 했다.


고모는 다 저런가!


교과서의 글자처럼 글씨를 잘 썼던 오빠는 대기업 건설사 임원이 되었다. 외삼촌의 회갑연, 칠순 때나 되어야 고모에게 전화해서 자리를 빛내달라 연락하고는 오빠는 정수기 일 이후로 집에 온 적은 없었다. 엄마는 때때로 '대기업에서 높은 사람으로 일하는 데 고모까지 챙기겠나 ~ 잘 사는 게 좋은 거지' 혼잣말하곤 했다.


몇 주전 엄마가 '아빠에게 얼굴이 안 선다'고 하셨다.

오십오 년을 사신 부부가 새삼 무슨 체면 타령일까 하였다.

몸이 편찮아 식사가 힘든 아빠를 걱정하는 고종사촌들

아빠의 조카들은 안부 전화가 오고, 보양식이다. 뭐다......

엄마의 조카들은 감감무소식.

엄마는 심란하였다.


지방에서 서울에 유학이라도 오거나, 병원 신세를 지을 때면 아빠 엄마는 수소문해서 최적의 환경으로 안내하고 늘 새 반찬을 마련해서 불편함 없이 지내다 가도록 하였다.

고맙게도 잊지 않고 아빠 조카들은 명절이면 산지 음식을 보내고 인사를 나누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일에 좋은 건

작은 행복이 크고 너그러운 행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흘 전,

이종사촌 오빠에게 짧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살아계실 때 얼굴 보여 드려요. 고마워하실 걸"


3월이 시작되는 오늘 아침

엄마의 봄날 같은 들뜬 목소리

"애, 네 오빠가 점심에 온단다. 뭐 끓일까? 그게 좋겠지"


"뭇국"

2024.05.01. 끓인 뭇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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